
금호서원(경산)
경산 금호서원은 문경공 허조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1922년부터는 허후와 허조를 함께 배향하고 있다. ‘준도문’이라 편액 한 외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하여 강당인 수교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마당의 좌측에는 평기와를 얹은 4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인 성경재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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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금호서원은 문경공 허조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1922년부터는 허후와 허조를 함께 배향하고 있다. ‘준도문’이라 편액 한 외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하여 강당인 수교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마당의 좌측에는 평기와를 얹은 4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인 성경재를 두었다.

금산서원은 1707년(숙종 33년)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허진수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허진수는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천품이 온화하고 재기가 뛰어난 영재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도산서원에 들어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1574년(선조 7년) 나라에서 그의 학행을 가상히 여겨 통정대부의 품계를 내렸으며, 만년에는 고향에서 정자를 짓고 후진양성에 진력하니 이때부터 그곳을 금곡이라 불렀다.

금곡서원은 1568년(선조 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치암[恥菴] 박충좌[朴忠佐] 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하였다. 그 뒤 박눌[朴訥]과 박손경[朴孫慶]을 추가로 배향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84년 유림에 의해 회산사[晦山祠] 터에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812년(순조 12) 의성군 안평면 하평리에 조선 개국공신인 김인찬[金仁贊]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이곡서원[尼谷書院]으로 창건하였고, 의성군 비안면으로 이건 했다가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었다. 그 뒤 1926년에 현 위치에 복설, 근성[芹城]으로 서원명을 고쳤다. 경내의 건물은 사우와 강당, 전사청, 내외삼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담장을 둘렀다. 서원의 경내는 매우 경사져서 강당과 사당의 고저차가 많이 난다.

1786년(정조 10)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서유(徐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귀산서사(龜山書社)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839년(헌종 5)에 ‘구산’이라고 사액 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848년에 서일원(徐一元)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83년 지방 유림에 의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금산원은 1842년에 창건한 언양 김 씨 원사로 감성재라 하고 위열 김취려를 주벽으로 김자수와 김성진을 배향, 삼위를 모셨다. 운영이 어려운 나주의 정열사를 1940년 경 이곳으로 옮겨 정렬사로 개명하고 김천일을 주벽으로 김자수, 김상건 삼위를 배향했다. 그 뒤 1964년 정렬사가 다시 나주로 옮겨지자 김취려를 주벽으로 모시고 김자수, 김천일, 김성진, 김상건 오위를 향사하면서 금산원으로 액호를 바꾸고 건물이 퇴락됨에 따라 1981년 2차례 중수하였다.
군자서원은 1820년에 도내 유림과 후손들의 발의로 삼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양산김씨의 사우이다. 강진에 처음 입향한 분은 강진읍 송현에 거주한 김자정이며, 그의 아들 김명규가 작천으로 이거 하였다. 창건 이후 향사의 예로 제향 되었으며, 1824년 강당을 신축하였으나 1880년 훼철당하였다. 1962년 신실 및 내삼문 강당을 재건하고, 1993 외삼문을 신축하였으며, 2009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립대구과학관은 2013년 개관한 이래 대구·경북 지역을 아우르는 거점 과학관으로서, 과학기술 문화 확산과 과학 대중화를 위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오고 있는 기관이다. ‘과학 문화 창달을 이끄는 생활밀착형 과학관’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지역민에게 전시, 교육, 행사를 통해 과학을 쉽게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는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만치당 김수남(1576∼1636)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김수남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조정을 따라 강화도로 피난하였으나 그곳에 적군이 침입하자 순절하였다. 이 서원은 숙종 13년(1687) 가야곡면 조정리에 송시열, 송준길이 세웠는데 숙종 16년(1690)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정조 5년(1781)에는 매죽헌 성삼문과 송재 조계명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청주의 기암서원은 조선 후기의 청백리 강백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699년(숙종 25)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강백년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오창면 기암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1706년에 오숙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84년 후손들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화서원은 보은군 금적산 북쪽 기슭에 있는 서원이다. 1917년 다시 지방 유림들의 주선으로 복건하여 5현을 봉안하여 매년 음력 9월 초 정일에 년 1회 제향을 봉행하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2변(籩) 2두(豆)이고,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사우와 강당 그리고 5칸의 관리사가 있다.

기장향교는 조선 광해군 1617년에 처음 지어졌다. 1855년의 성묘중수기(聖廟重修記)가 남아 있는데, 지금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이때 지어진 것이다. 건물 배치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앞에 두고,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뒤로한 전학 후묘의 공간 구성을 이루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서재, 풍화루,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대성전은 앞면 세 칸, 옆면 세 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하얀민들레한옥마을은 보은군에 위치하고 있다. 한옥마을 객실은 윗동과 아랫동으로 분리되는데, 윗동은 숙박실과 식사공간으로, 아랫동은 숙박실과 사랑채, 갤러리로 이루어져 있다. 자수 및 천연염색 체험, 판화찍기 체험, 뻥튀기 체험, 조선시대 생활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으며, 단체 손님의 경우 숙박도 가능하다.
무풍승지권역은 무주군 무풍면에 속해있으며, 무풍승지마을은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농촌 체험 마을이다. 무풍승 마을은 해발 고도가 높은 산간 지역의 특성을 살려서 고랭지 농업을 주로 하고 있으며, 주요 특산물로 찰옥수수, 사과, 감, 호두, 매실, 송이, 표고버섯 등이 있다. 농촌체험프로그램으로는 사과피자 만들기, 애플시나몬청 만들기, 반딧불 사과 따기 체험, 전통방식 두부 만들기, 천연비누 만들기, 천연모기기피제 만들기, 대형캠프파이어 등이 마련되어 있다.

내수전몽돌해변은 울릉도 저동리에 있는 해변으로 닥나무가 많이 자생해서 저전포라고도 했으나, 울릉도 개척민이었던 김내수라는 사람이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는 이유로 내수전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몽돌로 구성된 작은 해변으로 물이 매우 깨끗하여 스노클링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안전하게 해수욕을 즐길 수 있도록 해수풀장과 샤워장이 있어 가족이 함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금산군은 전체 면적의 71%가 임야로 구성된 산림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특히 금산산림문화타운이 위치한 남이면 건천리 지역은 원시림에 가까운 숲이 잘 보존되어 있고, 다양한 식물종과 남방계 식물 및 북방계 식물이 자라고 있는 식물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곳은 사계절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금산생태숲, 남이자연휴양림, 느티골산림욕장, 산림생태문화체험단지 및 목재문화체험장이 위치한 ‘산림생태종합휴양단지’이다.

섬의 모습이 물개를 닮았다고 해서 달서도라고도 한다. 제주도 북부 끝의 북촌리 마을 해안에서 400m 정도 거리의 앞바다에 떠 있는 무인도이다. 온통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섬으로 독립된 작은 섬이 모여 이 섬을 이룬다. 거센 파도와 해풍에 의해 바위가 갈라지는 절리 현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으며, 작은 섬과 섬 사이는 소규모의 모래벌판으로 연결되어 있다.

백두대간협곡열차(V-트레인)은 코레일 주관으로 영동선을 운행하는 관광열차로, 중부내륙의 가장 아름다운 구간인 영주, 봉화, 춘양, 분천, 양원, 승부, 철암 구간(27. 7㎞)을 운행한다. 절벽과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백두대간 협곡 사이를 운영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개방형 관광열차이다. V-train의 ‘V’는 백두대간의 깊은 협곡의 모습을 상징함과 동시에 valley(협곡)의 약자를 나타낸 것으로, 다이나믹한 여행의 즐거움을 표현했다.

국립나주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속 기관으로 영산강 유역에 남아있는 고고자료를 보존하고 전시하며 호남지역 발굴매장 문화재에 대한 수장고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국립박물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도심이 아닌 전원 속에 자리잡은 나주박물관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느림을 통해 휴식의 시간을 제공하는 역사공원의 기능도 수행하며, 첨단 기술을 문화영역에 접목한 새로운 개념의 열린 문화공간이다.

못재는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서쪽 지산 정상에 있는 연못으로 화산이 폭발하여 생긴 화구호라고 하나, 자연함몰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순채라는 식물이 자생하는데 예전에는 이 식물이 나병, 피부병, 황달병 등에 특효약이라 하여 많은 환자들이 병을 치료할 약재를 구하기 위해 찾아왔으며, 주변 잔디밭에는 인근 주민들이 몰려와서 편을 갈라 민속놀이인 씨름경기로 친목을 다졌다고 한다.

별장아원은 하루에 한 팀만을 위한 프라이빗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깨끗하고 정갈하게 관리되는 단독 독채 펜션이다. 탁 트인 자연 속에서 우리 가족, 우리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별장 같은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편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천북 굴 단지는 보령의 최북단 홍성 방조제 인근에 있는 굴 전문점 집약 단지이다. 천북 굴은 보령 8미 중 하나다. 천북 굴 단지에는 굴 전문 음식점들이 천수만 바다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굴은 지방이 적고 미네랄이 풍부해 영양과 맛이 우수하다. 굴은 8월까지의 산란기를 끝내고 가을에 살이 차기 시작해 겨울이 되면 최적의 상태가 된다. 굴은 11월에서 2월까지 잡히는 것을 최상품으로 치며 매년 겨울 중에 이곳 장은리 굴단지 일원에서 '천북 굴 축제'를 연다.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별자리펜션은 수도권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로 가깝고 경치가 아름다워 선녀들이 내려와 놀고 갔다는 전설을 간직한 을왕리 선녀바위 해변에 있다. 별자리펜션은 800여 평 규모에 바비큐장, 족구장, 농구장, 탁구장, 편의점, 넉넉한 주차장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또한 세미나 시설이 완벽히 갖추어져 있어서 업무상 회의 및 프레젠테이션 등 진행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어 편리하게 이용이 가능하다.

블루오션관광펜션은 영덕군 지정 해수욕장 모래사장 위에 위치해 객실에서 34m 거리로 바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객실 안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을 만큼 바다와 가까우며, 전용 해수욕장이 있어 더욱 편리하다. 영덕군이 운영하는 스킨스쿠버, 패들링, 보트 등 다양한 해양 레저활동도 펜션 인근에서 체험할 수 있다. 영덕 해맞이축제장과 영덕대게축제장이 차로 13분 거리에 있어 지역 축제 참여도 용이하다.

보보스호텔은 동북아의 중심도시 경제수도 인천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은 맑고 깨끗한 천혜자원이 가득한 곳으로 150여 개의 섬과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객실은 깔끔하고 편안한 시설로 되어 있으며 조용히 쉬기에 좋다. 근처 관광지로는 월미도 공원, 인천 개항지, 유람선과 낭만의 연안부두, 신선한 해산물이 넘쳐나는 소래포구와 무의도와 송도 등을 손꼽을 수 있다. 또한 살아 있는 교과서라 불리는 강화도는 자녀들과 함께 여행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노목계곡은 제천의 구학산을 타고 내려온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이다. 제천의 빼어난 절경인 탁사정을 지나 봉양읍 옥전리에 위치한 노목계곡은 아직은 외지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자연의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다. 물소리만으로도 시원한 계곡을 오르다 보면 곳곳에 편편한 바위와 그늘막을 친 듯 나무숲을 이루고 있으며 야영을 겸한 호젓한 피서를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멍딩이마을은 충북 괴산군 소수면에 위치한 마을이다. 벚나무, 살구나무 꽃길 및 쉼터조성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값싸고 품질 좋은 안전한 먹거리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마을 내에는 옛날 생활필수품이었던 짚신, 삼태미, 둥구미, 매판, 멍석, 가마니 등 짚풀공예품들을 전시한 짚풀공예전시장이 있다. 인근에 소암저수지는 조용하고 한적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겨울이 되면 얼음낚시를 즐기기도 한다.

연꽃으로 유명한 무안은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에서 회산 백련지까지 영산강을 따라 걷다 보면 연꽃 가득한 백련마을에 도착한다. 백련지는 원래 이름 없는 농업용 저수지였으나,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두 개의 저수지를 합치면서 ‘복용’이란 이름이 붙었다.

산서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고택으로 현 수유주의 10대 조가 광해군의 사화를 피해 일가와 함께 오산리에 정착하면서 건립하였다. 상량문에 따르면 안채는 1866년, 사랑채는 영조 49년(1733)에 지었다. 사랑채는 1875년 중수하였는데 안채를 세운 후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 1973년 문간채를 짓기 전에는 사랑채 화단 앞의 서문이 대문이었으나, 좁아서 마차가 드나들기에 어렵고 대문 방향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따로 문간채를 세웠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김해향교의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김해읍지』에 의하면 옛 김해부 동쪽 다전동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향교가 있던 산이 무너져 숙종 14년(1688)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전체적인 배치는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앞에 있고 제사 지내는 곳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일반 향교의 배치와 비슷하다.

고려 중기에 한 부호가 문중의 원찰로 금봉산(두류산)에 절을 짓고, 금봉사(金鳳寺)라 했다고 한다. 1926년(병인년)에 김송동 보살님이 지금의 두류실내수영장 별관자리에 대웅전과 요사 2동을 창건하였다. 1986년 대구에서 개최한 전국체전 때 금용사의 부지가 실내수영장으로 편입되면서, 현 위치로 이전하여 중창하였다.

금강사는 대승불교의 금강반야 정신을 실천 수행하는 사찰로, 1951년 월명법사가 창건했다. 그 후 일붕 경보대종사께서 이곳에서 안거했으며 역경, 포교, 도제, 국제불교포교, 교육도량, 전법의 초지 가람이었다. 1964년부터 개산 혜성선사가 금강사에서 도량을 승계하고 중흥불사를 계속하여 국제 불교포교의 근본도량으로 세계속에 알려진 사찰이 되었다. 금강사는 금정산 남쪽 기슭 명당에 자리했으며 많은 고승들이 은거 수행하여 온 비산비야의 수행처이기도 하다.

1968년 4월 10일 건립된 극락사는 태조 이성계가 ‘절골’이라 이름 붙인 곳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불교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극락사에는 아름다운 정원과 다양한 불교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둘러보기 좋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방문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금구향교는 1390년에 창건되어 1404년에 중창하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5년에 중건하였다가 167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그 뒤 6.

조산저수지 가는 길의 축령산 자락이 이어진 마을에 위치한 조선 전기 강학당으로, 김기서 강학당은 광산김씨 사당인 노산사 안에 있다. 김기서는 광산인으로, 자는 시견, 호는 돈목재이다. 성균관 직강으로 통정대부까지 오른 매산 김석원의 조카로, 효성이 지극하여 1508년 중종으로부터 광릉 참봉에 제수되고 장려도 받았다고 한다.

충남 태안에 위치한 꾸지나무골해수욕장은 생소한 이름만큼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곳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작고 아담한 백사장과 푸른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있으며, 백사장 양 끝에는 갯바위가 있어 바다 낚시터로 많이 이용된다. 고운 백사장과 멋진 송림, 그리고 양쪽에 갯바위가 있어 놀래미 낚시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이곳의 소나무 숲은 숲 그늘이 짙어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