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초항
속초항은 속초 시내와 가까이에 있는 항구로 러시아와 백두산으로 들어가는 여객 터미널이 자리잡고 있다. 항내수면적 160만km². 항만법상 1 종항에 속한다. 1905년 연안항로가 처음으로 개설되어 연안선박의 기항지로서 선박 출입이 잦았다. 1945년 8 ·15 광복과 더불어 38선으로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북한 치하에 들어가기도 했으며, 1962년 지정항, 1964년 개항장(開港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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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항은 속초 시내와 가까이에 있는 항구로 러시아와 백두산으로 들어가는 여객 터미널이 자리잡고 있다. 항내수면적 160만km². 항만법상 1 종항에 속한다. 1905년 연안항로가 처음으로 개설되어 연안선박의 기항지로서 선박 출입이 잦았다. 1945년 8 ·15 광복과 더불어 38선으로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북한 치하에 들어가기도 했으며, 1962년 지정항, 1964년 개항장(開港場)이 되었다.

조선시대 문신 검간 조정이 1626년 지은 가옥인 상주 양진당은 종도리(용마루 밑 서까래를 거는 도리)기록에 의하면 1807년(순조 7)에 중수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1966년 대홍수 때 사랑채가 훼손되고 안채 23칸만 남았으나 1981년 전면 해체, 복원하였다. 원래 정면 9칸, 측면 7칸의 규모의 ‘ㅁ’자형 맞배지붕 건물인데 지금은 퇴락하여 좌우가 약간 다른 ‘ㄷ’ 자형으로 남아 있다.

추원당은 1759년(영조 35)에 목조와가로 최초 건립되었으며, 배치는 묘우, 강당, 내외삼문, 전사청, 고직사 등 전형적인 재사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조선 선조, 인조 때의 학자인 정구, 김성일의 제자였던 검간 조정 선생의 불천위를 모신 재사이다. 조정 선생은 임란 시 창의하여 의병 활동을 주도하였고, 특히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임진란 기록’은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임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보존되고 있다.

마량방파제는 이름 그대로 마량포구를 보호하는 방파제로 큰 방파제(300m)와 작은 방파제(70m), 수중 방파제(120m), 등대로 되어 있다. 이곳의 어민들은 자연산 넙치를 잡고 있다. 봄이 되면 넙치들이 산란을 위해 갯벌의 연안으로 몰려들고, 이때를 맞추어 넙치를 잡는 것이다.

소정방폭포는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올레 6코스에 있는 폭포이다. 소정방이라는 말은 정방폭포 옆의 작은 폭포라는 의미로 정방 폭포의 동쪽 570m 지점에 있다. 대한민국 폭포 중 정방폭포와 같은 해안 폭포로 육지에서 곧바로 바다로 연결되어 낙수가 떨어진다. 폭포의 높이가 낮고 물이 워낙 차가워 주변 주민들의 물맞이 장소로 인기가 있다. 제주에는 백중날(음력 7월 15일) 차가운 물을 맞으면 일 년 동안 무사 건강하다는 풍속이 있어 백중날 물맞이 장소로도 사랑받는다.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금흔리에 있는 이 성은 흙으로 쌓은 산성으로, 내부에 넓은 계곡을 포용하고 계곡을 둘러싼 주위의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은 포곡식 산성 형태를 띄고 있다. 사벌면의 들판을 U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능선 가운데 있으며, 성의 안과 밖에서는 청동기 말기, 초기철기시대의 유물과 원삼국시대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성수산에 위치한 상이암은 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최초 도선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후 태조 3년(1394) 각여선사(覺如禪師)가 증수하였으나 1894년 동학혁명 때 병화를 입었다가 다시 1909년 김대건(金大建)이 중건했다. 일본 강점기에는 의병장 이석용이 상이암을 근거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그 여파로 절은 일본군대에 의해 불에 타버렸다. 1912년 대원(大圓) 스님이 재건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당시 소실되었다.

매향리평화역사관은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위치한 역사적인 박물관이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매향리에서 발생한 사건과 그로 인한 주민들의 경험을 기록하고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매향리평화역사관은 1950년대 초, 미군의 폭격 훈련장으로 사용되던 매향리 지역에서 발생한 폭격과 그로 인한 피해를 중심으로 전시된다. 역사관은 당시의 사진, 유물, 영상 자료 등을 통해 전쟁의 상황과 그로 인한 영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소이산은 철원평야에 우뚝 솟은 해발 352. 3m의 작은 산이다. 아직도 산책길을 제외한 구간은 지뢰지대로 철책을 곁에 두고 걷는 길이다. 고려시대부터 외적의 출현을 알리던 제1로 봉수대가 위치하였던 곳이며, 한국전쟁 이전 화려했던 구 철원의 역사를 기억하는 철원역사의 중심지로 소이산 정상에서 백마고지, 김일성 고지, 철원역, 제2땅굴, 노동당사는 물론 최대의 철새도래지와 철원평야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소양호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로, 강원 춘천시, 양구군, 인제군에 걸쳐 있다. 소양강댐의 축조로 형성된 호수로, 유역 면적은 2,703 km², 총저수량은 약 29억 톤에 달한다. 양구읍 석현리에 선착장이 마련되고, 쾌속 여객선 쾌룡호가 소양댐과 양구를 오가며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있다. 호수에는 50여 종의 민물고기가 서식하며, 계절에 따라 뱃길이 인제 신남까지 확장되어 내설악의 풍경까지 조망할 수 있다.

소양호는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1973년 10월 소양강을 막아 만든 동양 최대의 사력댐인 소양강댐에 의해 조성되었다. 면적은 1,608ha, 저수량은 약 29억 톤에 달하며, 수면 직선거리는 60km, 굴곡을 따라 측정한 수면 거리는 120km로 한국 최대 규모를 자랑해 ‘내륙의 바다’라 불린다. 소양강댐 주변에는 산책로와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정상에서 팔각정까지 이어지는 왕복 2. 5km 코스에서는 소양호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상원사는 치악산 남대봉(1,182m)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100평 남짓한 돌바닥 위에 세워져 있다. 절 앞 바위틈에서는 샘물이 솟고, 그 앞 40여 m 벼랑 끝에는 희귀한 계수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치악산의 이름 유래가 된 은혜 갚은 꿩 전설이 이 절에서 비롯되었다. 상원사는 신라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대웅전·심우당·심검당·범종각·산신각 등이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충주호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인 소양호는 1973년 높이 123m의 소양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되었다. 강원도 춘천시, 양구군, 인제군에 걸쳐 있는 소양호는 내륙의 바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한강 하류에 위치한 수도권 지역의 핵심 수자원이다. 소양호의 면적은 약 70㎢이고 유역면적은 2793㎢에 이르며 총저수량은 약 29억 톤이다.

상사마을은 전국 최장수 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장수마을에는 항상 좋은 물이 있게 마련인데 사도리의 경우 당몰샘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믿는다. ‘지리산 약초 뿌리 녹는 물이 다 흘러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몰샘에서 나오는 샘물의 효능 덕분에 마을에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당몰샘 옆에 위치하고 있는 쌍산재는 사도리의 유명한 집으로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 ‘윤스테이’ 촬영지이기도 했다. 쌍산재는 유명한 고택치고는 작은 대문을 가지고 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소야도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유난히 맑은 물과 약 700m의 은빛 모래사장, 넓은 잔디 야영장이 있다. 백사장 뒤로 해당화 군락과 해송이 우거진 숲이 있어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다. 일반에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기본적인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민박과 야영이 가능하다. 조용한 휴식을 원한다면 떼뿌리 해변을 추천한다.

하안단구는 경동성 요곡운동 (동족이 높고, 서쪽이 낮은 한반도의 기본 골격을 형성한 대규모의 융기현상) 이전에 홍수에 의해 하천 주변에 쌓였던 자갈과 모래가 지반이 융기된 후, 강물에 의해 깎이면서 강 주변에 계단모양으로 나타나는 지형을 말한다. 이 하안단구는 오랜 기간 농경지와 주거 지역 등 태백산맥 주변 지역에서는 주요 생활터전으로 활용되었다.

청산면 상동리의 상서마을은 마을 전체가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서마을의 돌담들은 흙을 사용하지 않고 돌로만 쌓은 전형적인 강담 구조를 띠고 있다.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으로 인하여 마을 길을 넓히느라 일부 담장을 옮기기도 하였지만 대체적으로 원형 그대로 잘 보존이 되어 있다.

영흥도 북쪽 십리포해수욕장 뒤편에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서어나무 군락지가 있다. 서어나무 350여 그루가 모여 있으며 수령은 150여 년이다.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서어나무는 소사나무라고도 불린다. 내리마을 주민들은 비바람을 막고 바닷가 근처의 논과 밭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나무를 심어봤지만 모래와 자갈이 섞인 토양 탓에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서어나무를 심고 정성으로 가꾸어 오늘날과 같은 군락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소백산 하늘자락공원은 용문면 매봉 자락 해발 730m에 위치한 공원이다. 공원 내에는 전망대, 산책로, 휴게공간, 다양한 조형물, 포토존 등이 있다. 전망대까지는 오르는 길은 데크길로 이루어져 있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게 했다. 하늘공원의 전망대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모티브로 하여 별빛이 소백산으로 흘러내리는 형상을 디자인했다. 나선형 된 전망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소백산 자락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일반적으로는 미륵불로 불리지만 형태로 볼 때 관세음보살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에는 초화문장식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중앙에는 변화한 부처님을 상징하는 작은 화불이 조각되어 있고, 양옆의 머리띠 매듭은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얼굴은 길쭉하지만 양볼이 두툼한 편이며, 눈은 지그시 감았고 오똑한 코 끝은 훼손되었다. 법의는 우견 편단으로 선간 되었으며, 왼쪽 어깨에는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있다.

삼천사는 661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따르면 그 규모가 대단히 커서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한다.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지만 최근의 고고학적 조사를 거치면서 ‘三千’이 아니라 ‘三川’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삼천사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재위 1389~1392)과 그의 두 아들의 묘로 전해지고 있다. 일명 궁촌왕릉으로 불린다. 고려 공양왕 4년(1392년) 7월에 이성계가 조선 태조로 즉위하였다. 태조는 8월에 공양왕을 폐하여 공양군으로 봉하고 강원특별자치도 원주로 보내어 감시하다가 태조 3년 3월에 공양군과 그의 두 아들 귀양지를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로 옮기고 한 달 뒤인 4월에 모두 처형했다.

소백산은 우리나라 12대 명산 중의 하나다. 한반도의 등뼈 같은 백두대간 줄기가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중심에 우뚝 선 소백산국립공원은 영주분지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충청북도 단양군 1개읍, 3개면, 경상북도 영주시 1개읍, 4개면과 봉화군 1개 면에 속해있다. 해발 1,439. 5m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국망봉(1,420.

소등섬은 남포마을 앞에 떠 있는 작은 무인도이다. 먼바다에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나 가족들을 위해 호롱불을 켜놓고 그 불빛을 보고 무사히 귀환하기를 빌었다 하여 소등섬이라 불린다고 한다. 소등섬은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일출 명소이며 득량만의 일출, 일몰과 같이 어우러졌을 때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소남머리는 서귀포시 송산동 해안에 있는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주상절리 절벽으로 소낭머리라고도 부른다. 형상이 소의 머리를 닮아 소남머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는 그 부근에 소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부르게 된 지명이라는 설도 있는데 머리는 동산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절벽이다 보니 용천수가 흘러나오는데 이곳을 담수욕장이라는 야외노천탕으로 쓰고 있으며 바다, 숲, 개울 3가지가 한 곳에 있다.

조선 선조 때 연원도(連元道) 찰방을 지낸 박계립(朴繼立)이 지은 17세기의 건물이다. 대전 보건 대학 담을 끼고 좌측으로 가면 송시열 유적지가 나오고, 그 뒤쪽으로 올라가다가 박팽년유허비(朴彭年遺墟碑) 아래쪽에 있다. 인근인 동구 가양동에서 태어난 그는 관직에서 물러난 후인 인조 22년(1644년) 이곳에 서당을 짓고 정원에 매화 세 그루를 심었으며, 사방에 정자를 세우고 버드나무 5그루를 심어서 오류정(五柳亭)이라 불렀다.

삼불암은 김제시 죽산면 불당마을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오래전부터 불당마을에는 고기를 잡으러 나갈때 마다 공양을 드리는 석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큰 해일이 일어 이 불상이 어디론가 묻혀버렸다.

영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의 부인이자 4대 조인 목조 이안사의 어머니가 되는 평창 이 씨의 무덤이다. 원래 이양무와 함께 전라도 전주에 거주하였으나 이곳으로 이주하여 생활하다가 별세하였다. 후에 목조 이안사가 함경도로 이주하면서 수백 년 동안 잊혔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를 비롯한 조선의 임금들은 조상의 무덤을 찾으려고 매우 애썼다.

소구니산(800m)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북쪽으로는 중미산, 동쪽으로는 유명산이 위치하고 있어 주변 산과 연계하여 등산하는 이용객이 많은 곳이다. 소구니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 선어치고개와 농다치고개를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농다치고개 코스는 오대산 두로봉에서 시작된 한강기맥에 연결되어 옥산~청계산~두물머리로 이어진다.

세천 포구는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있는 아주 작은 포구다. 위미리는 마치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보인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마을은 그 꼬리 부분에 자리 잡고 있어 우미라고 불렸다. 위미리의 세천 포구는 곤냇골개라고도 불리는데, 곤내는 가는 내, 골은 마을을 일컫고 개는 포구를 의미한다. 보말이 많이 잡히고, 아름다운 풍광과 잔잔한 물살로 낚시꾼과 사진을 취미로 하는 이들이 종종 찾는 곳이다.

삼거동 고인돌군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무덤이다. 삼거동 고인돌들은 모두 49기인데 반경 200미터 이내의 구릉에 분포에 있다. 두 개로 무리를 지어 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마치 바둑판처럼 보인다. 49기의 고인돌 중 20여 기는 덮개돌을 지탱하는 받침돌이 없으며, 덮개돌은 원형과 타원형으로 형태가 일정하지 않다. 23기로 이루어진 한 무리의 고인돌은 동서로 위치하고 있는데, 2기만 덮개돌이 1∼1. 3m로 두껍고 나머지는 얇은 편이다.

낙동강가 민씨 오우정(五友亭) 안에 있는 서원으로 연산군, 중종 때 학자인 민구령(閔九齡), 민구소(閔九韶), 민구연(閔九淵), 민구주(閔九疇), 민구서(閔九敍) 등 5형제를 배향하였다.

삼가향교는 조선 세종 때에 세웠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4년(1612)에 다시 지었다. 1826년 정우용이 대성전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이때 풍화루와 흥학당을 중수하였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 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전체적인 건물배치는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앞에 있고 제사를 지내는 곳인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진도 해안도로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세방낙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의 경관은 압권이다. 이곳에서 보는 낙조는 환상적이다. 해질 무렵 섬과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일몰의 장관은 주위의 파란 하늘을 단풍보다 더 붉은빛으로 물들인다. 중앙기상대가 한반도 최남단『제일의 낙조 전망지』로 선정했을 정도이다. 이 해안도로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다도해 드라이브 코스다.

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인 조식 선생의 유적지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조식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도천서원에 모시고 있던 청향당 이원과 죽각 이광우를 따로 모시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원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며, 이황 선생과 학문의 뜻을 같이 하였으며, 1546년에는 나라에서 벼슬을 내렸으나 거절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배산서원은 1771년에 덕연사만 세워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철거되었다. 그 뒤 1919년에 새로 지어 배산서당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