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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무장객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고창 무장객사

고창군 무장면에 있는 무장객사는 조선시대 무장현에 내려온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다. 조선 선조 14년(1581)에 건립되었다. 본관에 걸린 궐자를 새긴 나무 패는 임금을 상징하는 것으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과 지방관리들은 여기에 경의를 표했다.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면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축하의식을 행하였다. 본관은 돌을 쌓고 그 위에 세운 것으로 계단에 새긴 호랑이, 구름 등의 조각이 운치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읍성길 45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무장읍성은 1417년 무장진의 병마사에 마을을 다스리는 기능을 주어 무장진 병마사 김노가 쌓은 길이 약 1. 2㎞의 평지성이다. 읍성의 남문인 진무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동문터도 잘 남아 있다. 성 주위를 둘러싼 물길인 해자는 폭 4m, 길이 574m 정도로 그 흔적만 남아있다. 성 안의 건물로는 객사, 동헌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읍성길 45
공주 우금치 전적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 우금치 전적

공주 우금치 전적은 1894년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최후의 격전을 벌인 장소이다. 공주에서 부여로 넘어가는 기슭의 고개로 우금 고개, 우금재 또는 비우금 고개라고도 부른다. 우금치 고개는 호서지방의 요충지이며 중부지역의 거점으로, 충청도 감영소재지가 있는 공주 남쪽의 중요한 관문이었다. 1894년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반봉건과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죽창으로 대항한 곳으로 한국 근대사에서 매우 뜻깊은 장소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경주 황룡사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황룡사지

황룡사는 6세기 신라시대 때 만들어져 고려 13세기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진 사찰로 지금은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터만 남아있다. 면적 8,800평 규모에 불국사의 8배나 되는 대형 사찰로 추정된다. 왕명으로 553년(신라 진흥왕 14)에 창건하기 시작하여 566년에 주요 전당들이 완성되었고, 금당은 584년(진평왕 6)에 완성되었다. 선덕여왕 14년(645년) 탑의 건조까지 모두 완성된 황룡사는 신라의 호국 신앙의 중심지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고산사(장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장흥군역사관광

고산사(장흥)

고산사는 장평면에서 남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용두산 협곡에 위치한 자그마한 사찰로 인근에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은 없다. 고산사에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재인 고산사 석조여래입상이 볼만하다. 경내에는 약사보전과 요사채가 있고 약사보전 안에는 고려초기 석불인 약사여래 석불이 있다. 원래는 절터만 남아 있고 석불입상은 파손된 채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1966년 새로 지은 법당 안에 모셔놓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장평면 하탑동길 120
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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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역사관광

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지산동 민가 안에 있는데, 그 일대가 부락으로 변하여 옛 절터를 찾아볼 수 없으나, 원위치에 원상태로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을 미루어 당시 이 일대가 대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외면의 모서리를 죽이고 종문를 조각하여 매우 장식적이고 화려한 의장 수법을 보이고 있다. 지주의 정상부는 뾰족하고 바깥으로 내려오면서 3단의 굴곡을 활 모양의 선으로 처리하였으며, 지주의 안쪽에는 간공 두 개가 있는데 이들은 장방형의 형태로 구멍을 뚫어 간을 끼우도록 하였다.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고현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거제시역사관광

고현성

거제 고현성은 축조당시 사등성의 인구가 늘어나자 문종 1년(1451)부터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단종 1년(1453) 완공한 읍성이며, 성의 둘레는 921m, 높이 4m이며, 동·서·남쪽 세 방향에 성문을 설치하였다. 성문 앞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만들어 적으로부터 성문을 완전히 보호하였으며, 성을 둘러싼 물길인 해자를 설치하여 방어를 강화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읍성의 형태이다.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참수 처형으로 대표되는 순교성지이자 순교자의 처절하고 용기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의 모범을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앙이 무엇인지, 신앙인으로서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새로 나는 장소, 은총의 배움터이다. 박해시대 초기에는 사형 판결을 받은 사학죄인들에게 해읍정법이 적용되었는데, 이는 백성들에게 천주학을 경계하고자 사학죄인들을 출신 고향에서 공개 처형한다는 의미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왕릉로 118 (금성동)
고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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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역사관광

고산정

안동 고산정 일원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고산[孤山]의 빼어난 경관이 기록되어 있으며, 고산의 북쪽에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가 1564년(명종 19년)에 세운 고산정[孤山亭]이 들어서 있다. 고산정은 퇴계 이황과 금난수 등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교류하며 풍류와 학문을 나눈 장소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공간이며 퇴계가 유람했던 예던길과 농암종택이 인접한 가송협의 하천변 단애 아래에 위치해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77-42
공주상신리 당간지주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상신리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당을 꽂아두는 기다란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의 양쪽에 서서 이를 지탱시켜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 두 기둥만 남아있다. 이 당간지주는 마을 입구의 민가 뒷돌담에 서 있다. 남아있는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서 한쪽 기둥은 잘린 채 떨어져 있고, 다른 한쪽도 파손이 심하다.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고산서원(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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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장성군역사관광

고산서원(장성)

고산서원은 퇴계와 더불어 조선 성리학의 6대가 중 1인으로 추앙받는 노사 기정진이 고종 15년(1878)에 정사를 지어 담대헌이라 하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후손들이 1924년 중건하였으며, 1927년에 고산서원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노사 기정진은 19세기 전라도 지역뿐만 아니라 멀리 제주까지 전국적인 후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진원면 고산로 68
경충사(정기룡장군유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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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역사관광

경충사(정기룡장군유허지)

진양정공 보국숭록대부 충의공 정기룡 장군의 사당이다. 정기룡의 호는 매헌이고 조선시대인 1562년(명종 17)에 출생하였으며 1622년(광해군 14) 2월 한산도 통제영에서 삼군 통제사 재임 중 세상을 떠났다. 정기룡은 무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 당시 경상 우도방어사 조경 장군이 적에게 포로가 되자 구출에 성공하여 장군의 명칭을 얻었다. 그 뒤에도 크고 작은 싸움터에서 80여 회의 승전을 거듭하였다.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경충로 503-14
공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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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공림사

공림사는 낙영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신라 경문왕때에 자정선사가 창건한 고찰로 알려져 있다. 자정선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던 중 그 법력과 덕화가 세간에 두루 알려지자 왕이 선사를 국사에 봉하고 입궐을 청하였으나, 세상을 떠나온 사람이 다시 세간으로 나갈 수 없다고 사양했다고 한다. 왕이 선사의 덕화에 감동받아 왕명으로 사원을 창건하고 공림사의 사명을 지어 액자를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괴산로공림길 104
고란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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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고란약수

고란약수는 충남 부여군 부소산 북쪽 기슭 백마강(금강)변에 위치한 사찰 고란사의 약수이다. 이 사찰은 고란초에 의해 널리 알려져 있는데 법당 뒤편에서 나오는 약수와 함께 이 사찰의 명물을 이루고 있다. 고란사는 백제 멸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전설이 저하나 정확한 유적이나 유물은 없고, 현재의 고란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는데 현 사찰 건물은 은산 승각사를 이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곳은 인근 낙화암, 백마강 유람선과 함께 둘러보기 좋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5
계룡산신도내주초석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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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계룡시역사관광

계룡산신도내주초석석재

계룡산신도내주초석석재는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이다. 신도안면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후, 천도 후보지로 정했던 지역이다. 궁궐을 짓기 위해 1년여간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목재와 석재 등을 운반하다가, 신도안이 국토 남쪽에 치우치고 교통과 물 공급이 불편하며 풍수상 고려 개경과 유사하여 신 왕조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중단되었다. 이때 대궐터에 주춧돌로 쓰려고 가져다 놓은 주초석 약 115개가 남아 전해지고 있다.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
경남 하동 악양면 [슬로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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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역사관광

경남 하동 악양면 [슬로시티]

슬로시티는 느리게 살기 미학을 추구하는 도시를 가리키는데 2009년 2월 6일 슬로시티 국제조정이사회에서 하동군 악양면이 상정되어 우리나라 다섯 번째의 슬로시티로 인증받았다. 하동 악양은 세가지의 향기가 있다. 평사리 최참판댁의 서희가 악양의 넓은 논두렁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소설 속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악양서로 357
경주 헌강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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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헌강왕릉

이 능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의 무덤이다. 경문왕의 맏아들로서 왕위를 이었다. 헌강왕은 왕은 불교와 국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문치를 지향하였다. 재위 기간에 해마다 풍년이 들어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헌강왕이 죽은 후에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이 있는 곳은 경주 남산 북동쪽의 자락이다. 무덤은 높이 4. 2m, 지름 15.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경주 정강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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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정강왕릉

이 능은 신라 제50대 정강왕(재위 886~887)의 무덤이다. 정강왕은 경문왕의 둘째 아들이며, 헌강왕의 동생이다. 황룡사에 백고좌를 설치하여 왕이 친히 강연을 들었다. 정강왕은 병이 깊어지자 누이동생인 만(진성여왕)이 왕위를 잇게 하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재위 기간은 만 1년에 불과하다. 헌강왕과 마찬가지로 보리사 동남쪽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정강왕릉은 경주 남산의 북동쪽 능선 끝자락에 있는데, 북쪽에는 헌강왕릉이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경주 경애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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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경애왕릉

신라 55대 왕인 경애왕(재위 924~927)의 무덤이다. 경애왕은 신덕왕의 둘째 아들이자 경명왕의 동생으로, 경명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군사를 보내어 고려를 도왔다. 927년에 포석정에서 제사를 지낸 후 연회를 베풀던 중 그곳을 기습한 후백제의 견훤에게 사로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덤은 삼릉계곡 입구의 소나무 숲 안에 있다. 무덤의 가장자리를 따가라며 둘레돌로 보이는 석재가 일부 드러나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경국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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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성북구역사관광

경국사(서울)

경국사는 1325년에 자정율사가 창건하였는데, 삼각산의 청봉 아래 있다고 하여 ‘청암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창건주인 자정율사는 계율에 정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법화(法華), 유식(唯識) 등에서도 조예가 깊었으며, 계율과 법화경(法華經) 관음신앙을 승상 하던 사찰이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국문로 113-10 (정릉동)
경주 진평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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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진평왕릉

경주 진평왕릉은 신라 26대 진평왕(재위 579∼632)의 무덤이다. 진평왕은 독자적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운 중앙 행정부서를 설치하였다. 또한 중국의 수·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통해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효율적으로 막았고, 경주 명활성을 보수하여 수도 방위에 힘썼다. 높이 7. 9m, 지름 36. 4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돌을 둘렀으나 현재 몇 개만 남아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608
경기광주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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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역사관광

경기광주 한옥마을

400년이 넘은 충남 광천의 사대부 한옥을 그대로 옮겨 복원시켰다. 1,000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소나무들이 한옥과 어우러져 계절마다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수려한 자연 속에서 한옥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며 삶의 여유를 느껴볼 수 있다. 남한산성의 산기슭 아래 한옥스테이와 카페가 위치하고 있어 다채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경기도 광주시 새오개길 39 (목현동)
경극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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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역사관광

경극고택

경주 최 씨 집성촌인 대구광역시 옻골마을은 본래 종가, 장자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둘째 아들을 자리 잡게 하여 어느덧 200년이나 된 고택이 바로 경극고택이다. 대구 관광두레 주민사업체인 옻골마을에서는 잘 보존된 고택들과 적절하게 정비된 현대시설로 남녀노소 누구나 조선시대의 문화체험이 가능하다. 과거 조선 시대로 돌아간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한옥 스테이부터 다양한 전통 체험까지 즐길 수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195-3
견훤산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견훤산성

산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한 산성으로, 견훤이 쌓았다 하여 견훤산성이라 불린다. 이 산성뿐만 아니라 상주지역의 옛 성들이 견훤과의 관계는 삼국사기에 견훤과 그의 아버지 아자개가 상주 출신이란 기록 때문이다. 견훤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신라의 장군으로 있다가 이곳에서 군사를 양성하여, 신라 진성여왕 6년(892)에 반기를 들고 신라의 여러 성을 침공하다가 효공왕 4년(900)에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경주 인왕동 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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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인왕동 사지

경주 인왕동 사지는 인용사의 터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용사는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629~694)의 안녕을 비는 절이다.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멸망 이후 당나라는 신라까지 정벌하려 하면서 당에 머물고 있던 김인문을 감옥에 가두었다. 신라 사람들은 그의 귀국을 기원하며 관음도량을 열었으나, 효소왕 3년(694)에 김인문이 귀국하던 중에 죽자 그의 극락왕생을 빌며 미타도량으로 바꾸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경주 금척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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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금척리 고분군

경주 근교 금척리 평지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로, 크고 작은 30 여기의 무덤이 모여 있다. 이곳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받은 금으로 만든 자(금자)를 숨기기 위해서 40여 개의 가짜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지금도 이 무덤들 속에 묻혀 있을 것이라 전한다. 본격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1952년에 파괴된 무덤 2기를 조사하였다. 무덤 내부는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덧널(곽)을 설치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금척리
경주 율동 마애여래삼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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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율동 마애여래삼존입상

경주 벽도산의 서쪽을 향한 바위에 삼존불[三尊佛]을 조각한 마애불[磨崖佛]이다. 이 불상은 가까운 곳에 있는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서방 극락세계를 다스린다는 아미타불을 가운데에 새기고, 양쪽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새겼다. 아미타불의 머리는 아주 큼직하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낮게 있어 모자를 쓴 듯한데, 이는 굴불사지의 석조사면불상과 같은 양식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두대안길 69 (율동)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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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경주 굴불사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바위 불상으로 약 높이 3미터의 바위 네 면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서 사면석불이라 부른다. 이 사면불의 서쪽은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삼존불, 동쪽은 유리광세계의 약사여래불, 북쪽은 미륵불, 남쪽은 석가모니불을 각각 새긴 사방불의 형태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산업로 4214-76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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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골굴암의 높은 암벽에 있는 자연굴을 이용하여 만든 12개의 석굴 중 가장 윗부분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이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골굴석굴’에는 목조전실이 묘사되었으나 지금은 바위에 흔적만 남아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이 솟아있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은 가늘어진 눈, 작은 입, 좁고 긴 코 등의 표현에서 이전보다 형식화가 진전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 101-5
경주 동방동 와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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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동방동 와요지

경주 동방동 와요지는 1977년 택지 조성공사 도중에 우연히 발견된 가마터로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발굴조사하여 9기의 도자기와 기와를 굽던 가마터를 발굴하였다. 그중 1기를 조사한 결과 가마의 전체 길이는 10. 5m, 넓이 1. 72m인 구릉 경사면을 이용하여 만든 굴가마(등요)로 밝혀졌다. 도자기를 굽던 곳의 천장 부분 벽 일부가 남아있으며, 도자기를 빚던 곳과 굽던 방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동방동
경주 재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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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재매정

경주 재매정은 신라의 김유신 장군 집에 있던 우물이다. 화강암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만들었는데, 이 일대가 장군의 집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김유신 장군이 오랜 기간을 전쟁터에서 보내고 돌아오다가 다시 전쟁터로 떠날 때, 자신의 집 앞을 지나면서 가족들을 보지도 않고 우물물을 떠 오게 하여 말위에서 마시고는, “우리 집 물맛은 옛날 그대로구나”하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993년 발굴조사에서 재매정을 중심으로 사방 70m 지역을 발굴하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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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신라시대의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전체 높이 4. 36m, 불상 높이 2. 44m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한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게 솟아 있으며, 둥근 얼굴에서는 은은하게 내면적인 웃음이 번지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힘없이 축 늘어진 느낌이며, 군데군데 평행한 옷주름을 새겨 넣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 이 일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남쪽의 큰 바위에는 목조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석탑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남쪽면의 불상을 주존으로 하여 남향 사찰을 경영했었음을 알 수 있다. 9m나 되는 사각형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불상을 회화적으로 묘사하였다. 남쪽 바위면에는 삼존과 독립된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고, 동쪽 바위면에도 불상과 보살, 승려, 그리고 비천상을 표현해 놓았다.

경상북도 경주시 탑골길 36 (배반동)
경성 부민관 폭탄 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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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역사관광

경성 부민관 폭탄 의거지

경성 부민관 폭탄 의거지는 경성부민관에서 친일파가 주도하는 대회를 방해하기 위해 폭탄을 터트린 곳이다. 1945년 7월 24일 경성부민관 폭탄 의거 경성부민관은 1935년 12월 태평동 60번지에 세워진 경성부의 부립극장으로 오늘날로 하면 시립극장이다.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5 (태평로1가)
경양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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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역사관광

경양서원

김천시 구성면에 위치한 경양서원은 송오 여응구와 그의 아들 감호 여대로 부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 하기 위해 지은 서원이다. 서원 건물 오른쪽에 사당이 있는데 철폐 이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옛날과 같이 두 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여응구는 1572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론을 지냈으며, 여대로는 1583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에 이르고 임진왜란 때 창의지사였다.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3길 105
경광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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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역사관광

경광서원

금계리 동편 사천 위에는 예로부터 ‘유정사’라는 절이 있었으며, 선조 1년(1568)에 사림에 의해 경광서원이 세워졌다. 이후 현종 3년(1662)에는 이름을 ‘경광정사’로 바꾸고, 백죽당 배상지와 용재 이종준 두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인조 27년(1649)에는 ‘춘파이사’를 창건하여 용재 이종준과 경당 장흥효 두 선생을 모셨다. 숙종 12년(1687)에는 서원으로 승격되어 경당 선생의 위패를 경광정사로 옮기고, 백죽당과 용재 두 선생과 함께 제향 하였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3길 13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