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산서원
절강 장씨의 시조인 장해빈을 봉향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으로 1684년 창건되었다. 장해빈은 중국 항주의 조강현 출신으로 조선 선조 정유재란 때 장수로 와서 귀화한 뒤 군위에 정착했다. 군위에 정착하여 살아온 절강 장씨 문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59년 중건하여 북산서원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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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강 장씨의 시조인 장해빈을 봉향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으로 1684년 창건되었다. 장해빈은 중국 항주의 조강현 출신으로 조선 선조 정유재란 때 장수로 와서 귀화한 뒤 군위에 정착했다. 군위에 정착하여 살아온 절강 장씨 문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59년 중건하여 북산서원으로 승격되었다.

목화를 전래한 고려시대의 문신 문익점(文益漸, 1329~1398), 물레를 고안한 문래(文來), 직조법을 발명한 문영 (文英)등을 배향하고 있다. 1861년 창건하였으며, 1960년 현재의 서원터에 문중의 후손들이 신실인 경현사, 삼문, 강당, 외삼문인 상의문, 충선공 유허비각 등을 중수하였다. 남평문씨(南平文氏) 종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 중정(中丁)에 제사를 지낸다.

소보면 달산리 서북방 청화산의 동남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에 자리 잡은 법주사는 신라 소지왕 15년에 심지왕사가 창건했으나 조선 인조원년에 소실되어 현종원년(1660)에 재건된 전통사찰이다. 법주사는 영천시에 있는 은해사의 마지막 사찰로서 지금은 경내에 보광명전과 부속건물과 산신각, 맷돌, 그리고 법당 앞에 서 있는 본존 5층 사리탑(법주사 오층석탑)이 있다.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창평리에 있는 문양서원은 1793년(정조 17) 이언을 모시기 위하여 건립되었으며,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2년에 복원되었다.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해 온 흥양 이씨 문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사당인 경현사와 강당, 외삼문인 회진문, 동재 등 총 4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나, 서재의 경우 시멘트로 수리·보수되어 과거의 구조 형식을 알 수 없다.
고려 보문각 대제학과 판도판서의 관직에 오른 영천이씨 영양군 6세 남곡공 휘 석지와 그의 자제인 집현전 제학과 한성부윤이셨던 장자 휘 안우, 직제학 겸 병조판서이신 차자 휘 아직, 이조 정랑이 신 삼자 휘 안유, 군기사부정 휘 현실, 휘 안실 등 6위를 배향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첫 일요일 영천이 씨 남곡공파 후손들이 참 석하여 제사를 올린다.
군위군 군위읍 대북리에 있는 남계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 류성룡(1542~1607년)과 이호민(1553~1634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1581년(선조 14) 3월에 창건되었다. 류성룡이 1583년(선조 16)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남계서당을 건립하였는데, 1607년 세상을 떠난 뒤 1621년(광해군 13) 후학들이 중수하고 서애의 위패를 모셨으며, 남계서원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1787년(정조 11)에 이호민을 추가 배향하였다.
남천고택은 군위군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부림 홍씨의 집성촌인 한밤마을(부계면 대율리)에 있으며, 상매택 또는 쌍백당으로 불리어졌다. 부림홍씨는 입향조인 고려 문하사인(門下舍人) 홍로선생이 군위군에 정착하면서 이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었고, 남천고택은 홍노의 10 세손 홍우태의 살림집으로, 이후 맏손자들이 대대로 물려받으며 2명의 과거급제와 1명의 진사를 배출한 집이다.

향교는 국가에서 설립하여 유학을 가르치고 인재를 기르는 지방 교육 기관으로 지금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시나 문장을 짓는 법과 유교의 경전과 역사를 가르쳤고 중국과 조선의 성현에게 제사를 올렸다.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졌으며, 봄가을에 공자에게 석전대제를 지내고 초하루와 보름에 향을 피운다.

군위 인각사지는 군위군 화산의 북쪽 기슭 강가 퇴적지대에 자리 잡은 절터이다. 인각사는 선덕여왕 시절 원효가 세운 절이라 한다. 그 뒤 고려 때에 크게 고쳐 지었고, 일연이 충렬왕 10년(1284)부터 5년간 이 절에서 머물며 삼국유사를 지은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각사는 언제 세워졌는지 문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발굴조사 때 대웅전터로 생각되는 건물이 있던 곳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를 확인하여, 신라 후기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군위 부계면 남산리에는 신라 소지왕 15년 극달화상이 창건한 삼존석굴이 있다. 국보로 지정된 삼존석굴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자연동굴에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 온화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1960년대 말까지 세인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가 1970년대 초 학자들에 의해 경주석굴암 보다 1세기 이상 일찍 창건된 것으로 그 모태임이 밝혀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성을 인정받았다.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정신의 계승,확산을 위한 정신문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