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산 봉수대 터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남산 봉수대는 조선 태조 3년(1394)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설치하여, 갑오경장 다음 해까지 약 500년간 사용되어 왔다.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 봉수대’라 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다 하여 ‘경봉수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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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남산 봉수대는 조선 태조 3년(1394)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설치하여, 갑오경장 다음 해까지 약 500년간 사용되어 왔다.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 봉수대’라 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다 하여 ‘경봉수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대한문(大漢門)은 덕수궁의 정문으로 ‘대한’은 “한양이 창대해진다”라는 뜻이다. 원래 경운궁의 정문은 남쪽에 있었던 인화문(仁化門)이었으나, 동문인 대안문(大安門) 주변이 환구단을 비롯하여 새로운 도심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정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이름은 1906년(광무 10) 문을 수리하면서 바꾸게 되었다. 원래 대한문은 약 33m 앞에 있었으나 1970년대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1998년 조성된 남산골한옥마을은 남산 북측 옛 수도방위사령부 부지 총 79,934m²(24,180평)에 한옥 5동, 전통공예관, 천우각, 전통정원, 서울남산국악당, 새천년타임캡슐 광장으로 구성되어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체험거리를 만나볼 수 있으며, 남산 자락을 따라 전통조경 양식으로 조성된 계곡과 정자, 각종 화초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관훈동 30-1에 위치한 민씨 가옥은 조선 말기의 정치인이자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민영휘 일가가 거주한 곳이다. 민영휘는 일제강점기 판서, 한일은행 은행장 등을 역임한 관료로 막대한 부를 누렸으며 1895년 안국동으로부터 교동으로 이주하면서 관훈동 일대의 토지를 매입해 일가를 거주하게 했다. 1936년 기준으로 총 6동의 목조와즙과 2층 양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1976년 가옥 중 일부가 멸실되고 안채 일부와 문간채 등 목조와즙 2동만 남아있다.
경성 부민관 폭탄 의거지는 경성부민관에서 친일파가 주도하는 대회를 방해하기 위해 폭탄을 터트린 곳이다. 1945년 7월 24일 경성부민관 폭탄 의거 경성부민관은 1935년 12월 태평동 60번지에 세워진 경성부의 부립극장으로 오늘날로 하면 시립극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