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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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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암(임실)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역사관광

상이암(임실)

성수산에 위치한 상이암은 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최초 도선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후 태조 3년(1394) 각여선사(覺如禪師)가 증수하였으나 1894년 동학혁명 때 병화를 입었다가 다시 1909년 김대건(金大建)이 중건했다. 일본 강점기에는 의병장 이석용이 상이암을 근거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그 여파로 절은 일본군대에 의해 불에 타버렸다. 1912년 대원(大圓) 스님이 재건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당시 소실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수면 성수산길 658
산동리 남근석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역사관광

산동리 남근석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산동리 남근석은 남자 성기 모양으로 자연암석이나 암석을 조각하여 세운 것으로 복을 받거나 다산 풍농, 풍어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산동리마을 앞 당산나무 부근에 자리한 이 남근석은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조각되었다. 생김새는 건장한 남성의 성기가 충분히 발기되어 있는 모양으로 아랫부분에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는 점이 독특하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팔덕면 팔왕길 77
사현사(김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사현사(김제)

김제시 산동리의 사현사는 1934년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봉성 온(溫)씨 문중의 집안 사당으로 대율리에 세워진 것이다. 사현사는 1934년 세워진 봉성온씨 문중 사당이다. 당시에는 대율리에 세워졌으나 1967년 대율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수몰되기에 이르러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이 사당은 온신을 중심으로 온림, 온윤, 온후를 모시고 있다. 특히, 온달 장군과 온군해 장군의 단이 설치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선비로 1017-27
사동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역사관광

사동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사동서원은 장수군 산서면 사상리에 있는 서원이다. 이 사우는 조선 1847년(헌종 13)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전국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던 것을 1957년 복설 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 지역에 거주하던 김해 김 씨의 선조 가운데 김준손, 김기손, 김일손, 김대유, 김치삼, 김정택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사창길 35
사곡리남근석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역사관광

사곡리남근석

사곡리 남근석은 자경마을 입구에 있었던 것으로 경지 정리 시 도로변에 옮겨 세운 것이다. 강동로를 따라 고개를 넘으면 왼편으로 안내판과 함께 볼 수 있으나, 주의하지 않고 보면 지나칠 수 있다. 사곡리 남근석은 화강암을 돌기둥처럼 다듬어 만들어졌으며, 제작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높이 200㎝이고 사각기둥 꼴의 몸통이며, 상부의 귀두 부분의 높이는 37㎝이고 약간 퍼져 있는 형국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덕치면 사곡리 1019
불주사(군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역사관광

불주사(군산)

대한 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나포면 군둔마을에 위치해 있다. 본래 불지사였는데 불주사로 개칭했다. 군산 지역 사찰 중 유일하게 일주문이 있다. 현판에는 취성산 불주사라 새겨져 있는데, 취성산은 서해를 바라보고 있어 망해사라 하다가, 산세가 석가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 모습과 닮았다 하여 취성산으로 불리며, 정상에 봉화가 있었다 해서 봉화산으로도 불린다. 불주사는 계절마다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나포면 군둔길 226
봉강서원(완주)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역사관광

봉강서원(완주)

봉강서원은 1754년(영조 30년) 용진면 모란동에 임금으로부터 ‘모란서원’이라는 이름을 받아 세워졌던 것을 1852년(철종 3년) 지금의 위치에 건물을 옮겨 이름도 ‘봉강’으로 고쳤다. 그 뒤 대원군의 철폐령에 따라 1869년 헐어졌다가 1899년 사액서원 복귀에 따라 다시 세워졌다. 서원에는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 이방간을 중심으로 하여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충간공국헌 이헌구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고, 제사는 2월과 8월 두 차례에 나누어 지내오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봉강구만길 29
보흥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역사관광

보흥사

보흥사는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광대봉 남쪽 아래에 있는 금산사의 말사이다. 이곳은 신라시대에 창건하여 광덕사라 하였으며, 1448년에 중창하였다. 그 뒤 폐허가 된 것을 1914년에 이 절의 신도 민씨가 법당과 산신각을 신축하고 북수사라 하였다. 그러나 1448년 중수 도중에 상량문이 발견되어, 그 기록에 따라 보흥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사찰 내 건물로는 대웅전,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마령면 원강정1길 16-133
보천사(군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역사관광

보천사(군산)

군산의 축성산 기슭에 위치한 보천사는 정확히 언제 세워졌는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지만 신라 진흥왕 24년(602) 혜공이 세웠고, 고령 공민왕 원년인 1352년에 나옹화상이 다시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라 스님이 이 시기에 백제에 와서 절을 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352년에 나옹화상은 원나라에 있었다는 사실로 보아 전설로 생각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서수면 내무장길 249
벽성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벽성서원

벽성서원은 1965년 김해 김씨 종친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건물의 구성은 외삼문인 어덕문, 정면 네 칸과 측면 세 칸 규모의 팔작지붕 구조의 강당, 내삼문인 경의문, 정면 세 칸과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 구조인 사당 충인묘로 구성되어 있다. 벽성서원에서는 봄과 가을 두 차례 제사를 지낸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향교길 89-16
백현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역사관광

백현서원

백현서원은 1668년(현종 9)에 조선 중기의 문신 구영과 임윤성을 제향 하기 위하여 창건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그 뒤 1903년에 이르러 다시 세워졌다.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종리에 천곡서원이 창건되면서 진주임씨 후손들이 임윤성의 위패를 모셔갔기 때문에 현재는 구영의 위패만을 봉안하여 제향하고 있다. 1961년에는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백현서원을 중건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고산면 눈기러기로 66-73
백지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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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역사관광

백지사터

백지사터는 여산 동헌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대원군 집정 때인 1866년 병인박해가 계속 진행되어 대학살이 감행되는 동안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한 곳이다. 얼굴에 물을 뿜고 백지 붙이기를 여러 번 거듭하여 질식사시키는 방법으로 일명 ‘도모지사(塗貌紙死)’라고도 하며, 쇄국 정책의 분노와 증오에 양심과 신앙 자유가 질식한 곳이다. 옛 동헌 뜰에는 박해 사실을 증명하듯이 대원군의 척화비가 서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백운사(익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역사관광

백운사(익산)

백운사는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소속 사찰이다. 창건 연대나 연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전하지 않는다. 다만 928년(신라 경순왕 2)에 승려 백양(白楊)이 지금의 위치에서 1. 5㎞ 떨어진 산 위쪽에 창건하여 ‘법당산(法堂山) 혜정사(慧定寺)’로 사찰 이름을 붙여 부르다가 그 후 ‘백운암(白雲菴)’으로 불렸다는 사실만 전해지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천호산길 155-23
백암리남근석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백암리남근석

남근석은 남자의 성기 모양을 한 자연 암석이나, 암석을 조각하여 세운 것을 말하는데, 사람들이 섬기는 민간신앙 중 성기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흰 바위 마을 입구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 남근석은 이 마을에 있는 12 당산 중의 하나로, 일명 자지바우라고도 불린다. 높이는 1. 35m로 네모난 단 위에 길고도 곧게 뻗어 있다. 꼭대기 부분은 약간 뾰족하게 깎은 후 둥글게 처리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백산서원(익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역사관광

백산서원(익산)

백산서원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동향의 맞배지붕 형식 사당이다. 1915년 만포 정제호와 모은 정동식의 후손들이 선조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익산의 연일정씨 가묘로 출발하였으나, 연재 송병선을 주벽으로 모시고 안양 정흥식을 추배 하면서 익산의 대표적인 충절 사당이 되었다. 송병선은 송시열의 후손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자결하였고,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동서로3길 15
백산서원(김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백산서원(김제)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백산서원은 1928년 일제강점기에 창건된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청곡 윤찬을 비롯하여 구봉 윤여임, 죽계 백선남, 죽음 윤자선, 담재 윤자민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백산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무인 및 무관들이 모여서 강의를 하던 강당은 정면 5칸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산면 하서3길 84
백석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백석서원

백석서원은 조선 효종 3년(1652년) 승반산에 세워졌던 하나의 사당이다. 유집(柳楫)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고종 5년(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고, 1902년 지금의 자리에 앞면 3칸, 옆면 2칸 맞배지붕으로 된 한식 목조기와집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범득골길 187-22 (갈공동)
반계선생유적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역사관광

반계선생유적지

조선 효종·현종 때 실학의 선구자인 반계 유형원(1622∼1673) 선생의 유적이다. 선생은 1648년 2차례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효종 4년(1653)에 이곳으로 이사한 후 일생을 숨어 지냈다. 선생은 뛰어난 학문으로 거듭 벼슬자리를 받았으나 모두 사퇴하고, 평생을 학문에만 힘을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곳에서 그는 『반계수록』26권을 펴냈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 반계로 97-68
반곡서원(완주)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역사관광

반곡서원(완주)

반곡서원은 수선리 산정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원이다. 이 지방에 살고 있던 담양국씨들이 선조들의 절의와 효행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1871년(고종 8년) 2월에 세워 1995년에 중건하였다. 반곡서원 입구에는 반곡사 중건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그 뒤로 반곡서원으로 들어가는 충효문이 있다. 경내에는 사당과 강당 외에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고, 교직사 1동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비봉면 반곡서원길 52-29
미륵암(남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미륵암(남원)

미륵암은 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암자로 신라 말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당과 법당, 요사로 이루어져 있다가 1992년 대웅전, 1994년 용화전과 산신각을 새로 지었다. 용화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내부에 절터에서 발견된 높이 192㎝의 고려시대 석불인 미륵암 석불이 모셔져 있으며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노송로 1188-5 (노암동)
미륵사지 석등하대석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역사관광

미륵사지 석등하대석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은 익산 미륵사지 내 동원과 중원에 있는 2기의 하대석이다. 중원의 석등 하대석은 석탑과 금당지 사이에 있고, 동원의 석등 하대석은 탑과 금당 사이에 있다.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1974년 8월 21일부터 9월 20일까지 실시한 [동탑지 발굴 및 서탑 기초 조사] 당시 풍탁 및 철물과 함께 발견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내
미당 서정주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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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미당 서정주 생가

고창의 선운사, 질마재 부근 진마마을에 위치한 미당 서정주의 생가이다. 미당은 어린 시절 이 집에서 서당을 다니다가 10살 때 인근의 줄포로 이사하여 줄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5세 때인 1929년 서울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이곳은 그가 아홉 살 무렵 부안 줄포보통학교에 입학하려고 이사 가기 전까지 살던 집인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부안면 미당길 16
문창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역사관광

문창서원

문창서원은 옥구향교 구내에 위치해 있다. 자천대와 마주 보는 곳에 담장으로 둘러싸인 정면 3칸 규모의 건물이다. 당나라에서 돌아왔을 때 세상의 인심이 어지럽고 어수선하자, 자천대에 올라 책을 읽으며 근심과 걱정을 달랬다고 하는 최치원 선생을 모신 사당인데 시호인 문창후를 서원명으로 쓴 것이다. 현재 걸려있는 문창서원이라는 편액은 신해년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구읍 광월길 33-50
문수사(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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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문수사(김제)

문수사는 백제무왕 25년(서기 623년) 혜덕왕사가 문수보살의 현몽으로 문수골에 창건하고 사찰 이름을 문수암이라 칭하였다. 그 후 서기 950년에 화재로 건물 등은 소멸되고 문수암 현판만이 현재 사찰의 부지인 장소에 날아와 떨어졌다고 한다. 현 소재지에 건립하라는 지시 인가 하여 서기 957년 고려 광종 8년에 혜림왕사가 현 장소에 중창하였다. 전 문수골과 현재 장소의 거리는 350m이고, 날아온 현판은 현재 보존하고 있으며 필적은 신필이라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황산5길 158 (황산동)
문수사(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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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문수사(고창)

문수사는 고창과 전남 장성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문수산(621m)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고수면 소재지에서 고수도요지를 지나 위로 올라가면 조산 저수지가 나오고, 왼쪽 골짜기를 타고 6㎞ 정도 가면 문수사가 있다. 의자왕 3년(643)에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수면 칠성길 135
무주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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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역사관광

무주향교

무주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지금 위치 북쪽에 처음 지었다.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심해지자 숙종 18년(1692)에 향로산 서쪽으로 옮겼으나 지대가 습하여 순조 34년(1834) 이후 지금 있는 자리로 다시 옮겼다. 현재의 향교 건물들은 그 후 몇 차례의 보수를 한 것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주읍 단천로 135
무주 지전마을 옛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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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역사관광

무주 지전마을 옛 담장

지전이라는 이름은 이 곳이 예전부터 지초(芝草)가 많이 나던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지며 마을의 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을 옆을 흐르는 남대천가의 오래된 여러 구의 느티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가장 오래된 것은 약 320년 정도로 이러한 나무들이 제방 아래에 있다는 것은 남대천이 마을로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방을 쌓은 뒤에 현재의 위치에 식재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길산리 48-1
무주 적상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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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역사관광

무주 적상산성

무주 적상산성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고려 후기 축조된 방어 성곽이다. 무주 적상산성은 삼국 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 지대에 축성되어 한때 방치되기도 하였으나, 고려 시대에는 국란이 있을 때마다 인근 백성의 피난처가 되었다. 조선 광해군 2년(1610년) 이곳에 조선시대 다섯 개의 사고 중의 하나인 적상산사고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모덕사(벽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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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모덕사(벽제서원)

모덕사는 벽제서원이라고도 하며, 토헌 박초(1367~1454)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67년에 세워졌다. 이곳은 조선초기에 이름을 떨쳤던 선비 박초의 학식을 본받고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박초는 어려서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15살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고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선 개국 직후에는 전라도 수군도절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 무엇보다 벽골제를 중수하여 고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입석동
말목장터와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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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말목장터와 감나무

정읍시 이평면 면사무소 앞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말목장터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배들평 농민 수천 명이 고부로 가기 전에 모였던 곳으로 제1차 백산기포를 할 때까지 장두청을 두고 진을 설치했던 장소이다. 또한 이곳에는 180년 정도 된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이 나무 아래에서 말목장터에 모여든 농민들에게 전봉준이 군수 조병갑의 탐학과 농민 수탈의 실정을 알리고 농민봉기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고 전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두자리
만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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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만화서원

제주고씨 고인상이 선조 문충공 고경을 주벽으로, 문영공 고용현과 화당 고만욱을 추배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 만화마을에 위치해 있다. 문충공파 파조 고경은 고려말의 문신으로 호는 휴옹, 시호은 문충 또는 문영으로 이부상서 백연의 아들로 다섯 살에 시를 지었고 열두 살에 논어를 외우니 당시에 옥산의 신동이라 하였다. 충렬왕 18년(1292) 16세에 친명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만화길 50
만일사(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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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역사관광

만일사(순창)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회문산 자락에 있는 만일사는 백제 무왕(673년) 때 처음 세워진 사찰로 조선 초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 무학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 그 후 6. 25 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54년에 다시 세웠고 1998년에 일주문, 대웅전, 요사채 각 1동씩을 건립하였다. 만일사라는 명칭은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자 만일 동안 이곳에서 기도하였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구림면 안심길 103-134
만석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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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만석보지

이곳은 만석대교와 제방 사이에 위치한 고부군수 조병갑이 쌓은 만석보의 터다. 보(洑)란 논에 물을 대기 위한 목적으로 둑을 쌓고 냇물을 가두어 두는 곳을 말한다. 신태인에서 고부로 가는 지점의 동진강을 건너는 다리 하류에는 보뚝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주위에는 넓고 비옥한 배들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 너른 평야에서 1만 석이나 되는 많은 쌀을 거둬들일 수 있다 하여 만석보라 이름하였지만, 굶주리고 착취당해야 했던 농민들의 분노가 서려있기도 하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만경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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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만경향교

향교는 공자와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만경향교는 1407년(태종 7)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만경읍 두내산1길 25-10
두곡서원(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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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두곡서원(김제)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립 교육 기관이다. 두곡서원은 1634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몽주, 강원기, 함부림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2년에 훼철되었다. 1901년 유림에 의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향사를 지내오다가 1970년에 복원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9길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