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불암(김제)
삼불암은 김제시 죽산면 불당마을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오래전부터 불당마을에는 고기를 잡으러 나갈때 마다 공양을 드리는 석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큰 해일이 일어 이 불상이 어디론가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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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암은 김제시 죽산면 불당마을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오래전부터 불당마을에는 고기를 잡으러 나갈때 마다 공양을 드리는 석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큰 해일이 일어 이 불상이 어디론가 묻혀버렸다.

김제시 산동리의 사현사는 1934년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봉성 온(溫)씨 문중의 집안 사당으로 대율리에 세워진 것이다. 사현사는 1934년 세워진 봉성온씨 문중 사당이다. 당시에는 대율리에 세워졌으나 1967년 대율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수몰되기에 이르러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이 사당은 온신을 중심으로 온림, 온윤, 온후를 모시고 있다. 특히, 온달 장군과 온군해 장군의 단이 설치되어 있다.

벽성서원은 1965년 김해 김씨 종친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건물의 구성은 외삼문인 어덕문, 정면 네 칸과 측면 세 칸 규모의 팔작지붕 구조의 강당, 내삼문인 경의문, 정면 세 칸과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 구조인 사당 충인묘로 구성되어 있다. 벽성서원에서는 봄과 가을 두 차례 제사를 지낸다.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백산서원은 1928년 일제강점기에 창건된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청곡 윤찬을 비롯하여 구봉 윤여임, 죽계 백선남, 죽음 윤자선, 담재 윤자민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백산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무인 및 무관들이 모여서 강의를 하던 강당은 정면 5칸이다.
백석서원은 조선 효종 3년(1652년) 승반산에 세워졌던 하나의 사당이다. 유집(柳楫)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고종 5년(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고, 1902년 지금의 자리에 앞면 3칸, 옆면 2칸 맞배지붕으로 된 한식 목조기와집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익산시 쪽으로 6㎞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다. 백산저수지는 다른 저수지와는 달리 주변에서 집수된 물이 아닌 섬진강 수계인 운암호의 물을 간선 수로로 이동하여 펌프로 퍼 올려 저장하는 저수지이다. 백산저수지에서는 붕어, 잉어, 향어 등 대어들이 많이 나와 낚시꾼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아름다운 서해의 낙조와 자연 농원지구, 금만경평야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수사는 백제무왕 25년(서기 623년) 혜덕왕사가 문수보살의 현몽으로 문수골에 창건하고 사찰 이름을 문수암이라 칭하였다. 그 후 서기 950년에 화재로 건물 등은 소멸되고 문수암 현판만이 현재 사찰의 부지인 장소에 날아와 떨어졌다고 한다. 현 소재지에 건립하라는 지시 인가 하여 서기 957년 고려 광종 8년에 혜림왕사가 현 장소에 중창하였다. 전 문수골과 현재 장소의 거리는 350m이고, 날아온 현판은 현재 보존하고 있으며 필적은 신필이라고 한다.
모덕사는 벽제서원이라고도 하며, 토헌 박초(1367~1454)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67년에 세워졌다. 이곳은 조선초기에 이름을 떨쳤던 선비 박초의 학식을 본받고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박초는 어려서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15살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고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선 개국 직후에는 전라도 수군도절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 무엇보다 벽골제를 중수하여 고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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