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천목장군과 도깨비살
조선개국과 정란공신(태종 이방원의 집권에 기여한 관리)인 마천목 장군 선대에 장흥에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성황당이 있고 당제를 올리는 마을이어서 당산마을이라 했고 침곡과 송정 중간에 있고 고달면 두계 앞에 있는 어살(어전)을 도깨비살이라 했다. 마천목 장군이 어릴 적 어머니가 병을 얻어 물고기를 원하자 섬진강변에 나갔다가 이상하게 푸른 돌을 주워왔는데 도깨비들이 몰려와 두목 도깨비를 돌려주면 무엇이든지 다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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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국과 정란공신(태종 이방원의 집권에 기여한 관리)인 마천목 장군 선대에 장흥에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성황당이 있고 당제를 올리는 마을이어서 당산마을이라 했고 침곡과 송정 중간에 있고 고달면 두계 앞에 있는 어살(어전)을 도깨비살이라 했다. 마천목 장군이 어릴 적 어머니가 병을 얻어 물고기를 원하자 섬진강변에 나갔다가 이상하게 푸른 돌을 주워왔는데 도깨비들이 몰려와 두목 도깨비를 돌려주면 무엇이든지 다하겠다고 했다.

평산신씨 시조이며 고려의 개국 공신 신숭겸( ~927) 장군의 유적이다. 신숭겸은 왕건을 도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워 개국 일등공신이 되었다. 덕양사는 선조 22년(1589)에 창건하여 신숭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으로 정유재란 때 모든 건물이 불타고 선조 36년(1603)에 신실이 중수되었으며 현종 6년(1665) 이전의 서원 규모로 모두 중건되었다.

곡성에 위치한 관음사는 선세 마을에서 계곡을 타고 더 올라가면 접할 수 있다. 관음사는 백제 분서왕 4년(301년)에 성덕보살이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벌교에서 금동 관세음보살상을 모셔와 봉안하여 창건한 남한 제일의 백제 고찰이며 내륙 유일의 관음성지로서 그 가치가 크다.

조선 중종 38년(1543년) 심광형이 이 지역 유림들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은 정자로서 ‘호연정’이라고도 한다. 증손자 심민각이 오래된 정자를 옛 터 아래쪽으로 옮겨 다시 지었으며 5대손 심세익이 고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80년에 수리를 한 것이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구성은 마루 1칸을 3면을 터 만들었고 2칸 반은 방으로 꾸몄다.

인근의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서 힘껏 가르치거라 하는 중종의 하명을 받아 심광형은 일종의 영재학교를 세운다. 동악산을 등지고 섬진강과 마주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인 군촌마을에 함허정과 군지촌정사(제호정 고택)를 세웠다. 1535년에 지어진 군지촌정사는 조선 후기의 건물로 사랑채의 이름으로, 지금 남아 있는 사랑채와 고택 제월당은 180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서, 군지촌정사의 원형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