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 세종 3년(1421)에 세워 유교를 공부했던 곳이다. 세종 22년(1440)에 향교 관계자들의 거처인 치성재, 학생들의 거처인 동·서재, 공부하는 장소인 명륜당, 휴식공간인 풍화루를 새로 지으면서 이름을 ‘수학원학사서재’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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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 세종 3년(1421)에 세워 유교를 공부했던 곳이다. 세종 22년(1440)에 향교 관계자들의 거처인 치성재, 학생들의 거처인 동·서재, 공부하는 장소인 명륜당, 휴식공간인 풍화루를 새로 지으면서 이름을 ‘수학원학사서재’로 바꾸었다.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일대에 있는 사천읍성은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약 1. 5㎞의 둘레 중 현재는 3개 부근 약 300m의 성곽이 남아있다. 사천의 옛 이름이 사물(史勿), 사수(泗水), 동성(東城) 등이었는데 조선 태종 때부터 사천이라 하였다. 세종 24년(1442)에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명에 의해 쌓았다고 전해지며, 이곳에 돌로 성을 쌓기 시작하여 3년 후(1445)에 완성시켰다. 이로부터 4년 뒤 관청을 짓고 읍을 옮겼다고 한다.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때 범승 연기조사가 창건한 역사 깊은 고찰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인 숙종 12년(1686)에 승려들이 힘을 모아 10년 세월에 걸쳐 중창불사로 크게 중흥했다. 그러나 62년이 지난 후인 영조 24년(1748)에 큰 불로 말미암아 불행히도 큰 재앙을 겪었으며 같은 왕 34년(1758)에 여러 스님이 또 합심하여 명부전과 대양루 그리고 사왕문을 중건했다.

구계서원은 사천읍 구암리 만죽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학자인 구암 이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구암 이정은 중종 31년(1536) 진사로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두루 거친 문신이자 학자였다. 성리학에 밝았으며 후진양성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이 서원은 선조 39년(1606)에 세웠으며, 광해군 3년(1611) 사당인 구산사를 세웠다.

곤양향교의 창건연대는 명확하게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곤양군이 세종 원년(1419)에 군으로 승격되었음을 상기할 때 향교도 세종시대에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중종(中宗) 25년(1530)에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곤양군조에 의하면 "관원은 군수·훈도 각 1인씩이다. "라는 기록을 보아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득강이 곤양군수로 부임한 후 그의 많은 업적 가운데 특히 향학에 힘써 많은 유생)을 길러 내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