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산리사(봉화)
조선 중기 문신인 김종걸(1628∼1708)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사림들이 세운 건물이다. 선생은 학문과 덕행에서 뿐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이 병들자 소태산에 올라가 7일 동안 금식 기도를 드렸다. 그 후 약을 구하러 가는 길에 호랑이가 나타나 인도하여 명약을 구해 부모님의 병을 낫게 했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그는 죽은 뒤에 이조 참판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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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인 김종걸(1628∼1708)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사림들이 세운 건물이다. 선생은 학문과 덕행에서 뿐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이 병들자 소태산에 올라가 7일 동안 금식 기도를 드렸다. 그 후 약을 구하러 가는 길에 호랑이가 나타나 인도하여 명약을 구해 부모님의 병을 낫게 했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그는 죽은 뒤에 이조 참판으로 추대되었다.

봉화군 봉화읍 도촌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서원인 도계서원은 1610년(광해군 2) 지방 유림의 공의로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던 충절 이수형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이후 이유, 이보흠, 이여빈 등 충절의 본보기가 되었던 인물들을 추가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구양서원은 1914년 처음 백산 변경회와 봉은 변극태 선생을 봉향하는 사당을 건립하고 세덕사라 이름 지었다. 1924년 후손들에 의해 묘우, 강당, 서재 등을 신축하고 사림의 뜻에 따라 구양이사로 승격됐다. 1984년에는 후손 변교우가 자비로 중수할 때 규모를 확장하여 묘우, 전사청, 동재, 서재, 삼문, 문루, 기타 부속건물을 신축했다. 이후 서원으로 승격하여 대은 변안렬 선생을 주벽으로 삼고 변경회, 변극태 선생을 배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만서원은 1676년에 사림에서 건립하였다. 금인, 남몽오, 박선장, 권호신 등 4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묘호를 기영사(耆英祠)라 하다가 1766년에 구만서원으로 승격한 뒤, 1868년에 흥선대원군의 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67년에 지방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전체적인 배치는 사당인 상현사와 강당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는데, 주위에는 방형의 판축담장을 두른 후 전면에는 사주문을 세웠으며 두 공간 사이에는 일각문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