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천사(구미)
보천사는 구미시 매봉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면서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이름만 전해오다가 불상이 발견되어 1595년 평동 거주 최재기 등 신도들이 보호각을 지어 보호하였다. 이 석불의 발견으로 보천사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절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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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사는 구미시 매봉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면서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이름만 전해오다가 불상이 발견되어 1595년 평동 거주 최재기 등 신도들이 보호각을 지어 보호하였다. 이 석불의 발견으로 보천사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절임을 알 수 있다.

1963년 제5대부터 제9대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로 대지에 생가, 안채, 분향소, 관리사 등 4동의 건물이 있다. 박 전대통령 생가는 1900년 경에 지은 15평 규모의 초가집으로 전형적인 농촌 가옥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집에서 1917년에 태어나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0년을 살았다.

문산서원은 세덕사에서 노수함과 노경필, 노경필 등 경주 안강 노씨를 모시고 있다. 1792년(정조 16) 창건되었으며, 1868년(고종 5) 서원 훼철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이후 1986년 현 위치에 중건되었다. 외삼문인 상지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문산서원 현판을 단 4칸의 이학당이 보인다. 그 양옆으로 각각 역락재와 시습재가 자리 잡고 있으며, 별도로 배향 인물을 모시는 사당인 세덕사가 있다. 마당 한쪽에 문산서원 사적비와 문산서원 기공비가 늘어서 있다.

동락서원은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낙동강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장현광은 인조 때 의정부 우참찬을 역임한 문관으로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를 모아 전장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동락서원이란 동방의 이락이라는 뜻으로 이락이 주자학의 상징인 것처럼, 동락서원이 조선 성리학의 근원이자 상징이 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구미 대둔사는 건축기법와 양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인 17세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석가여래좌상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응진전, 삼성각 그리고 3동의 요사가 있고,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대웅전과 대웅전 내부에 있는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신라 눌지왕 30년(446)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낙봉서원은 1646년(인조 24) 유림의 뜻으로 세워진 조선 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으로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였다. 이후 1931년에 지방 유림의 발의로 복원된 이래 제향을 지내오다가, 1977년 묘우를 다시 세우고 김숙자, 김취성, 박운, 김취문, 고응척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경내에는 사우인 상덕묘, 강당인 집의당, 동재인 세심재, 서재인 정교당, 그리고 신문과 양정문 등이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도립공원 내에 있는 해발 976m의 험준한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금오산성을 처음 쌓은 연대가 문헌상에 있지 않아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고려 후기 왜구들이 내륙 깊숙이까지 빈번히 쳐들어와 인명을 살상하고 노략질을 일삼자, 인근 선산, 인동, 개령, 성주 백성들이 금오산에 피난하여 왜구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고 군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향교는 유교를 숭상하던 시대에 각 지방에 설치한 국립 교육기관이다. 구미 선산향교는 조선 초기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나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 그 후 선조 33년(1600)에 선산부사 김용(金涌)이 대성전(大成殿)과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지었고, 인조 1년(1623)에 선산부사 심륜(沈倫)이 명륜당(明倫堂)과 동재, 서재 등을 새로 지었다.

매학정은 고산 황기로와 그의 사위 옥산 이우가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고산은 서예가 뛰어나서 초성이라 하였고 옥산 역시 서예의 대가였다. 1533년에 조부의 휴양지에 정자를 지어 매학정이라 하였으며, 후에 옥산이 물려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54년 옥산의 증손 학정 이동명이 중건하고 1675년 그 옆에 귀락당을 지었다. 이 정자는 남향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