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가리미륵불
일반적으로는 미륵불로 불리지만 형태로 볼 때 관세음보살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에는 초화문장식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중앙에는 변화한 부처님을 상징하는 작은 화불이 조각되어 있고, 양옆의 머리띠 매듭은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얼굴은 길쭉하지만 양볼이 두툼한 편이며, 눈은 지그시 감았고 오똑한 코 끝은 훼손되었다. 법의는 우견 편단으로 선간 되었으며, 왼쪽 어깨에는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있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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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는 미륵불로 불리지만 형태로 볼 때 관세음보살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에는 초화문장식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중앙에는 변화한 부처님을 상징하는 작은 화불이 조각되어 있고, 양옆의 머리띠 매듭은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얼굴은 길쭉하지만 양볼이 두툼한 편이며, 눈은 지그시 감았고 오똑한 코 끝은 훼손되었다. 법의는 우견 편단으로 선간 되었으며, 왼쪽 어깨에는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있다.

이후 고려 때 나옹화상이 건립한 금탑을 허물고 부친의 묘를 경기도 연천땅 남송정에서 이장했다. 가야사를 불태워 버린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대원군도 그의 아들인 조선 26대 고종왕이 즉위하자 가야사를 승계하여 1871년(고종 8년) 불살라버린 가야사의 동쪽 산중턱 서운산 남쪽기슭에 새 절을 창건하였는데 이 절은 부처님께 속죄한다는 뜻으로 보덕사라 명하였다. 보덕사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인 보덕사극락전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인 보덕사석등이 있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대성전은 숙종 8년에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1987년에 다시 한번 보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