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강강당
삼강강당은 조선 광해군 때의 학자 청풍자 정윤목(1571~1629)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윤목은 서원부원군 정탁의 셋째 아들로 초서에 뛰어난 학자이다. 서애 류성룡, 한강 정구의 가르침을 받아 성리학에 정통했으며, 특히 필법이 탁월해서 초서의 대가로 존경받았다. 삼강강당의 건물은 삼강마을 동쪽에 있으며 낙동강변을 바라보고 있다. 강당의 오른쪽에는 학당이 있다. 뒤쪽은 사당이 있었던 자리로 현재는 철거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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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강당은 조선 광해군 때의 학자 청풍자 정윤목(1571~1629)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윤목은 서원부원군 정탁의 셋째 아들로 초서에 뛰어난 학자이다. 서애 류성룡, 한강 정구의 가르침을 받아 성리학에 정통했으며, 특히 필법이 탁월해서 초서의 대가로 존경받았다. 삼강강당의 건물은 삼강마을 동쪽에 있으며 낙동강변을 바라보고 있다. 강당의 오른쪽에는 학당이 있다. 뒤쪽은 사당이 있었던 자리로 현재는 철거되어 사라졌다.
보문사는 676년(신라 문무왕 16)에 의상대가사 창건하고 1185년(고려 명종 15) 보조국사 지눌이 다시 지은 사찰이다. 지눌은 극락전을 비롯한 건물 7동을 복원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극락전과 반학루, 요사채만 남았다. 극락전은 맞배지붕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서 주포 양식과 익공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 조선 중·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또한 내부에는 아미타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명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875년(헌강왕 1) 두운이 소백산 자락에 창건하였다. 1662년(현종 3) 화재로 전소된 뒤 여러 승려들이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1668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자 신익 등이 중창의 뜻을 세우고 10여 년 동안 시주를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6·25전쟁 때 전란으로 소실된 것을 1955년 주지 만준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암(東庵)이라고 기록된 동악사는 냉정산(冷井山)남쪽산기슭에 위치하고 지세가 학을 닮았다고 하여 동학사라 불리었다는 전설이 있다.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지금은 기와조각이 나오고 있어 옛날부터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다시 보광전이란 현판을 걸고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옮겨서 주존으로 봉안되고 있다.

도정서원은 1640년에 건립하였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 정탁(1526~1605)과 그의 셋째 아들 정윤목(1571~1629)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 ‘향현사’로부터 비롯되었다. 1697년(숙종 23)에 지역 사림과 후손들의 정성을 모아 강당채를 건립하여 도정서원으로 승격하였다.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일부분이 훼철되었으나, 1997년 동재, 서재, 전사청, 누각을 새로 지어 복원하였다.

노봉서원은 조선 단종(재위 1452∼1468) 때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키다 순절한 죽림 권산해(∼1456)의 절의를 본받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산해는 조선 전기의 의인이다. 세조 원년(1455)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두 임금 섬기기를 거부하며 낙향했다. 그 뒤 사육신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절했다.

예천군 용궁면에 있는 기천 서원은 1665년(현종 6)에 고려 인물인 안준을 비롯하여 이문흥, 문근, 문관, 이구 등 5위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기천 정사를 세웠다. 이후 1692년(숙종 18)에는 용궁 월오리로 1차 이건 하였으며, 1703년 (숙종 29)에는 향내 유림의 합의에 따라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712년(숙종 38) 현 위치인 용궁면 월오리 오룡곡으로 옮겨 재건하였다.

금곡서원은 1568년(선조 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치암[恥菴] 박충좌[朴忠佐] 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하였다. 그 뒤 박눌[朴訥]과 박손경[朴孫慶]을 추가로 배향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84년 유림에 의해 회산사[晦山祠] 터에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