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암사(남양주)
불암사는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 후기 헌덕왕 16년(824) 지증대사가 창건하였고, 도선이 중창하였으며, 무학이 삼창하였다. 불암사는 보물로 지정된 ‘석씨원류 목판’으로 유명하다. 석씨원류 목판이란 석가의 일대기나 전법제자들의 행적을 목판에 새긴 것으로, 1673년 승려 지십이 불암사에서 ‘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이란 책을 펴낼 때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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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사는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 후기 헌덕왕 16년(824) 지증대사가 창건하였고, 도선이 중창하였으며, 무학이 삼창하였다. 불암사는 보물로 지정된 ‘석씨원류 목판’으로 유명하다. 석씨원류 목판이란 석가의 일대기나 전법제자들의 행적을 목판에 새긴 것으로, 1673년 승려 지십이 불암사에서 ‘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이란 책을 펴낼 때 제작하였다.
불령사는 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로 호랑산이라 불리는 효양산의 비룡골 옆 산비탈에 위치해 있다. 불심이 계곡에 충만하다고 해서 불령사라 불린다. 절의 창건이나 연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지만, 신라 645년(선덕여왕 14)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할 뿐이다. 그 뒤의 연혁은 없으며, 이후 낡고 허물어진 사찰을 1912년에 봉주 승려가 중건하였다. 그 뒤 1930년 이종태 주지가 중수하였다.

불당동 유적공원은 충남 천안시 서북구에 자리 잡고 있다. 천안시 불당지구 택지개발사업 과정에서 발굴 조사된 유적을 정비하고 복원하여 조성되었다. 공원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집터와 후대의 무덤들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청동기 시대의 집터는 아주 긴 방형 주거지가 특징적이며,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많이 유행하는 원형, 방형 집 자리가 주를 이룬다. 청동기 시대의 전기와 중기에 해당되는 대단위 취락유적이며, 우리나라 선사문화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대한불교 법화종 소속 사찰로, 창원시 비음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전통 사찰이다. 불곡사의 창건 연대를 알 수 있는 사료는 없으나, 창원 지역에서 구전되는 설화나 『한국 불교 사찰 사전』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에 국사 진경(854~923)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1929년 우담 화상이 옛날 절터에 드러나 있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파내어 비로전에 모시고 다시 사찰을 세웠다.

상주는 고도의 웅주였을 뿐 아니라 신라의 제2수도이며 고려 팔목의 하나로 다른 지역보다 일찍부터 불교문화가 발달한 지역으로 갑장사, 승장사, 남장사, 북장사 등 역사적인 고찰들이 남아 있다. 상주시 내서면 북장리 천주산 중턱에 위치한 북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시대 진감국사 혜소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서원은 1613년(광해군 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현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향현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후 1700년(숙종 26)에 서원으로 개편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고종 5)년에 훼철되었으며, 1967년 옛터 서쪽에 복원하고 영정을 봉안하고 석채례를 행했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전통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 주거지역이다. 그리고 많은 사적들과 문화재, 민속자료가 있어 도심 속의 거리 박물관이라 불리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에서 ‘북촌(North Village)’이라고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가회동과 송현동, 안국동, 그리고 삼청동이 있다. 사간동과 계동, 소격동 그리고 재동에는 역사의 흔적이 동네이름으로 남아 수백 년을 지켜온 곳이기도 하다.

남평문씨 희개(希凱 : 호 청영(淸潁) 1550~1610년)가 정유재란 뒤 고향에 돌아와 세운 것으로 창건 당시에는 청영정(淸潁亭)이라 불렀다. 희개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였으며 정유재란 때는 고창현감으로 수성(守城)에 공을 세운바 있다. 청영정은 헌종 4년경(1838)에 청풍(淸風)김씨 영동정공파(令同正公波)의 후손인 김기성(金基成)이 사들여 오늘과 같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실이 있는 팔작집으로 개축하고 이름도 부춘정으로 고친듯하다.

절강 장씨의 시조인 장해빈을 봉향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으로 1684년 창건되었다. 장해빈은 중국 항주의 조강현 출신으로 조선 선조 정유재란 때 장수로 와서 귀화한 뒤 군위에 정착했다. 군위에 정착하여 살아온 절강 장씨 문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59년 중건하여 북산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숙정문(肅靖門)은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하나로, 한양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처음에는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숙정문(肅靖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존 도성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다. 1976년에 문루를 새로 지었다.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년 4월부터 서쪽 성곽 0. 5㎞, 북쪽의 진입로 0. 6㎞ 구간과 함께 다시 개방했다.

부용정은 고려말 조선초에 활동한 김문발(金文發, 1359∼1418)이 지은 정자로 평야가 펼쳐져 있는 평지에 2단으로 대지를 고른 후 건립되었다. 정자의 이름은 연(蓮)을 꽃 중의 군자(君子)라고 칭송하였던 북송(北宋) 주돈이(周敦 )의 애련설(愛蓮設)에 담긴 뜻을 취하여 지었다. 이 정자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역 향약의 시행장소로 매우 유서가 깊은 곳이다. 또한 그는 이곳에서 이시원(李始元), 노자정(盧自亭) 등과 학문을 논하고 시를 읊기도 하였다.
조선 영조 11년(1735년)에 후손들이 손린(孫遴) 선생의 사당을 지음으로써 시작되어 조선 순조 3년(1803년)에 봉산서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1864년 서원 훼철령으로 서원은 없어지고 1967년에 다시 강당을 지어 경모재(敬慕齋)라고 하였다. 그리고 1996년에 후손들의 노력으로 강당인 지행당(砥行堂), 동재 자리에 사당인 봉암사(鳳岩祠)와 서재인 송독재(誦讀齋)를 세우고 손린 선생을 기리는 유허비도 세웠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부여향교는 언제 세웠는지 잘 알 수 없으나 조선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원래 부여읍 구교리의 서쪽 기슭에 세웠던 것을 18세기 중엽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고,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전체적인 배치는 공부하는 공간인 명륜당이 앞쪽에 있고,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뒤쪽에 있어 전학 후묘의 구조로 되어 있다.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는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두는데, 이 깃발을 다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시켜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원주시 봉산동 내천 옆에 자리한 이 당간지주는 원래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 내에 서 있던 것이라 한다. 기단부(基壇部)가 땅에 묻혀 있어 그 모양을 알 수 없으며, 좌우 두 기둥과 기둥사이의 당간받침돌만이 남아있다.

조선 중기 문신인 김종걸(1628∼1708)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사림들이 세운 건물이다. 선생은 학문과 덕행에서 뿐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이 병들자 소태산에 올라가 7일 동안 금식 기도를 드렸다. 그 후 약을 구하러 가는 길에 호랑이가 나타나 인도하여 명약을 구해 부모님의 병을 낫게 했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그는 죽은 뒤에 이조 참판으로 추대되었다.
조선 고종 12년(1875)에 달성 지역의 토호인 최상룡이 문회를 위해서 건립한 정자이다. 만년에 학문을 강론하면서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뜻이 담긴 공공 건축물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달성군 공산면 4개 마을(강동·독좌·위남·단산)에서 쓰던 초가 사무소가 있었으나, 이 4개 마을을 합쳐 봉무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자 초가를 헐고 이 건물을 지었다.

봉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1742년(영조 18)에 징월이 창건하였으며 인근 보현산에 있던 법화사를 학서산으로 옮겨왔으며, 법화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사찰을 옮겨온 설화가 전해지는데 법화사의 한 사미승이 탁발을 나갔다가 병이 들어 절에 돌아오지 못하고 민가에서 요양하였다. 사람들은 사미승을 극진히 보살폈는데, 여름이 되자 개고기가 몸을 회복하는 데 좋다며 먹으라고 권하였다.

서해를 바라보며 서있는 봉림사는 신라 진덕여왕(647~653)때 고구려, 백제와의 잦은 침략을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물리치고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절 이름은 창건 당시 궁궐에서 기르던 새가 절 근처의 숲 속에 날아들었다는 데서 유래하고, 산 이름도 비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1978년 이 불상을 개금 할 때 발견된 복장 내에 조성개금기에 의하면 조성시기는 1312년 이전임을 알 수 있다.
봉래사는 외나로도의 항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덕암산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조그만 암자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절이다. 송광사 판암 스님께서 1935년 덕암산 아래에 초가 3칸을 건립, 명이 송수인 스님을 청하여 거주하다 1938년 여름에 법당 4칸을 창건하여 신흥암이라 하였고 1949년 명송 스님께서 송광사로 가시고 남원 실상사의 벽운성범 스님께서 안거하면서 암자명을 봉래사라고 개칭하였다.

1796년 완성된 수원 화성의 봉돈(烽墩)은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전하는 군사신호체계이다. 일반적인 봉수대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봉돈은 축조방식이 독특하다. 화성 성벽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화강석으로 기초를 쌓고, 윗부분은 벽돌로 성벽보다 높게 축조했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인 수원화성의 봉돈에는 적군의 공격에 대비해 포혈과 총안은 물론 봉수군들이 사용할 구들방과 창고 등도 갖췄다.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봉덕서원은 조선시대의 문신 괴은 박두극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강당 내부에는 ‘봉덕재상량문’과 ‘봉덕재기’, ‘봉덕서원’이라는 현판이 있고 상량문에 의하면 1911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봉강서원은 1754년(영조 30년) 용진면 모란동에 임금으로부터 ‘모란서원’이라는 이름을 받아 세워졌던 것을 1852년(철종 3년) 지금의 위치에 건물을 옮겨 이름도 ‘봉강’으로 고쳤다. 그 뒤 대원군의 철폐령에 따라 1869년 헐어졌다가 1899년 사액서원 복귀에 따라 다시 세워졌다. 서원에는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 이방간을 중심으로 하여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충간공국헌 이헌구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고, 제사는 2월과 8월 두 차례에 나누어 지내오고 있다.

봉곡서원은 논산시 남부에 위치한 서원이다. 이 서원은 1712년(숙종 38) 현재 논산시에 속한 여산 공촌면 장항리에 창건하였으며,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그 후 1899년 돈암서원 유림의 주도하에 여산향교 유림과 여산부사 윤기진 및 후손의 협력으로 봉곡서원지에 제단을 설치하여 봉곡단소로 운영되다 유림 출연금과 정부 지원으로 1966년에 현 위치에 서원을 건립하였다.

본원정사(本願精舍)는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삼각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 소속의 사찰이다. 본원정사에는 한국전쟁 때 태고사에 불이 나서 옮겨왔다고 전하는 목조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륵불 사이인 부처님 없는 시대에 중생들을 교화하는 대비보살이다. 특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지옥에 들어가 교화해 제도하는 보살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복천암은 상당공원 인근 충북교육과학연구원에서 KBS송신탑을 향해 오르는 임도 중턱에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상당공원에서 내려 등산로를 이용해야 한다. 복천암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는 목암사지가 있으며, 복천암에서 우암산(牛岩山) 338m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목에는 흥천사지와 천흥사지가 있다. 목암사지에서는 석불이, 흥천사지에서는 동종이 출토됐다. 복천암에는 요사와 극락전, 관음전(1층은 공양방) 등이 있다.

목화를 전래한 고려시대의 문신 문익점(文益漸, 1329~1398), 물레를 고안한 문래(文來), 직조법을 발명한 문영 (文英)등을 배향하고 있다. 1861년 창건하였으며, 1960년 현재의 서원터에 문중의 후손들이 신실인 경현사, 삼문, 강당, 외삼문인 상의문, 충선공 유허비각 등을 중수하였다. 남평문씨(南平文氏) 종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 중정(中丁)에 제사를 지낸다.

복천사(福泉寺)는 충청북도 제천시 독송정산(獨松頂山) 자락에 자리한 재단법인 대한 불교 육주회 사찰이다. 독송정산(獨松頂山). 복천사가 있는 남산의 이름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향교가 있던 향교골로 독순봉, 또는 독심정(獨深頂)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제천의 명동 한복판에 있으며, 제천 사람들은 이곳에서 먼 옛날 전설 속의 인물들을 만난다. 생육신의 한 사람 원호, 그리고 학다리 처녀.
복전암은 보문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복전선원이라고도 불린다. 불교의 진리를 갈고닦으며 복밭을 일구는 수행 도량으로, 여러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사찰이다. 사찰은 대웅전을 비롯해 5채의 기와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구니 스님이 거주하는 절집 특유의 정갈하고 단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많은 스님들이 이곳에서 불법(佛法)에 정진하며 기도와 공부에 매진하고 있어, 사찰 전체는 매우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주의 복신미륵은 한 쌍의 미륵으로 조선시대에 쌓은 제주성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것은 동자복, 서쪽에 있는 것은 서자복이라고 한다. 동자복은 만수사 옛터인 민가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의 평안과 여러 활동의 안전을 기원하는 석불로, 집안의 제액, 육아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제를 올렸으며, 제주성의 동쪽에서 성안을 수호하는 기능도 하였다. 서자복은 용화사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옛날 제주성의 서쪽에서 성 안을 수호하는 기능을 하였다 한다.

보현암은 경남 고성군의 수태산에 있는 사찰로 13m 높이로 우뚝 솟은 금동 약사여래 대불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산 중턱에 있어 경치가 좋고, 사찰 뒤쪽으로는 바다도 보인다. 특히 가을에는 산을 물들인 알록달록한 단풍이 커다란 불상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보흥사는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광대봉 남쪽 아래에 있는 금산사의 말사이다. 이곳은 신라시대에 창건하여 광덕사라 하였으며, 1448년에 중창하였다. 그 뒤 폐허가 된 것을 1914년에 이 절의 신도 민씨가 법당과 산신각을 신축하고 북수사라 하였다. 그러나 1448년 중수 도중에 상량문이 발견되어, 그 기록에 따라 보흥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사찰 내 건물로는 대웅전,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보현선원[普賢禪院]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려는 불자들. 즉 보현행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 포교당으로 성관[性觀] 스님에 의해 2015년 수원 인계동에 최초로 창건되었고 이듬해 부처님 오신 날 즈음하여 광교산 보현선원을 개산 창건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광교산 아래 자리 잡고 있어 도심 속 사찰임에도 공기가 맑고 주변이 조용하다.
보타사는 증평군 연탄 2리 산에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증평 두타산 자락에 자리한 보타사는 130여 년의 짧은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조선 고종 때 창건되었으며 1976년 옛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중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넓지 않은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이곳은 두타산 능선이 병풍처럼 이어져 있어 아늑하면서도 조용한 풍경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충북 진천군 진천읍의 보탑사는 연곡리에 자리하고 있다. 연곡리 절터는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는 큰 절터로만 전해 왔는데, 그 중심에 삼국 시대 목탑 건축의 전통을 잇는 삼 층 목탑을 세움으로써 새롭게 되살아났다.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범종각과 법고각이 나란히 멋스러움을 뽐내고 그 안쪽으로는 이곳에서 자랑하는 목탑이 자리하고 있으며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진천 연곡리 석비가 있다.
보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이다. 보현사는 대관령과 선자령 바로 아래에 자리하여 산세가 높은 만큼 주변 경관이 뛰어나고, 대웅전, 영산전, 지장전, 삼성각, 금강루 등의 전각들이 법식에 맞게 자연과 잘 어울려 있어 산사의 그윽한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보현사의 창건기에 대하여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보현보살이 창건하셨다는 설화가 전하는 보현사는 650년(진덕여왕 4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보천사는 구미시 매봉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면서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이름만 전해오다가 불상이 발견되어 1595년 평동 거주 최재기 등 신도들이 보호각을 지어 보호하였다. 이 석불의 발견으로 보천사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절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