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흥화문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이다. 원래 경희궁으로 들어가는 문읜 5개로, 정문인 흥화문 외에도 동쪽에 흥원문, 서쪽에 숭의문, 남쪽에 개양문, 북쪽에 무덕문이 있었다. 창건 당시 경희궁은 창경궁 제도를 따라서 규모를 작게 하여 정문도 단층으로 세웠다. 경희궁 근처 얕은 고개를 ‘야주개’라 하였는데, 이는 흥화문의 현판 글씨가 명필이라 밤에도 빛이나 그 광채가 고개까지 훤하게 비추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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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이다. 원래 경희궁으로 들어가는 문읜 5개로, 정문인 흥화문 외에도 동쪽에 흥원문, 서쪽에 숭의문, 남쪽에 개양문, 북쪽에 무덕문이 있었다. 창건 당시 경희궁은 창경궁 제도를 따라서 규모를 작게 하여 정문도 단층으로 세웠다. 경희궁 근처 얕은 고개를 ‘야주개’라 하였는데, 이는 흥화문의 현판 글씨가 명필이라 밤에도 빛이나 그 광채가 고개까지 훤하게 비추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경국사는 1325년에 자정율사가 창건하였는데, 삼각산의 청봉 아래 있다고 하여 ‘청암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창건주인 자정율사는 계율에 정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법화(法華), 유식(唯識) 등에서도 조예가 깊었으며, 계율과 법화경(法華經) 관음신앙을 승상 하던 사찰이었다.
경성 부민관 폭탄 의거지는 경성부민관에서 친일파가 주도하는 대회를 방해하기 위해 폭탄을 터트린 곳이다. 1945년 7월 24일 경성부민관 폭탄 의거 경성부민관은 1935년 12월 태평동 60번지에 세워진 경성부의 부립극장으로 오늘날로 하면 시립극장이다.

건청궁(乾淸宮)은 1873년(고종 10)에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진 궁 안의 궁이다. ‘건청’은 ‘하늘은 맑다’라는 뜻으로,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다. 건청궁의 왕의 생활공간인 장안당(長安堂, 오랫동안 평안하게 지냄)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곤녕합(坤寧閤, 땅이 편안함)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안당과 곤녕합은 복도로 이어져 있다.

이 일대는 조선후기에 처형장으로도 이용되었는데,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 10여명이 순교한 곳이다. 지금은 기해박해 당시 천주교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당고개 순교성지가 들어서 있다.

내원사는 삼각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 정릉 골짜기를 지나 1㎞ 정도 오르면 멀리 목멱산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터전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내원사의 존재를 밝혀주는 것은 현재로서는 김정호가 제작한 「수선전도(首善全圖)」와 1859년(철종 10) 만들어져 사찰에 전하는「백의대사불도(白衣大士佛圖)」라는 목판이 유일하다.

부군당은 마을의 안녕과 복을 지켜주는 부군신을 모신 곳으로 서울의 대표적인 마을신앙이다. 부군당의 정면에는 당의 주신인 조선 태조 이성계와 그 부인의 화분이 나란히 모셔져 있고, 그 왼쪽 벽면에는 삼불재석이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