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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서원(함안)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함안군역사관광

서산서원(함안)

서산서원은 숙종 계미년(1703)에 경상도 유학자 곽억령 등이 생육신이신 이맹전, 조려, 원호, 김시습, 남효온 등의 병향이 사육신의 예에 따라 이루어짐이 마땅함을 국왕께 상소하여 윤허를 받고 여섯 분의 제향을 위하여 창립한 서원이다. 숙종 때인 1713년에는 국가에서 제물을 내리고 서산서원의 현판을 내렸으나 고종 때 서원쳘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 후 조려선생의 후손들이 1984년에 사우, 강당, 재료, 문, 원장 등을 빠짐없이 갖추어 복원하였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군로 1235
서산관아문 및 외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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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역사관광

서산관아문 및 외동헌

서산 관아문 및 외동헌은 서산읍성 안에 있던 관아 건물이다. 1871년에 서산 군수 오병선이 다시 지은 것이다. 외동현은 서산시청 본관이 있는 곳에서 1978~1979년에 지금 자리로 옮겼고, 관아문도 1979년에 해체 복원하였다. 관아문은 서산군 외동헌의 정문으로, 앞면에는 ‘서령군문’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은 2층짜리 문루 건물이며, 지붕 옆면이 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관아문길 1
서산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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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역사관광

서산객사

객사는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 건물로 고을 수령이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정청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의 사신이 머물렀던 좌우익실로 구성되어 있다. 서산객사는 본래 지금의 시청인 관아 내에 있었다. 처음 세워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청 내에 남아 있는 외동헌과 관아문의 기법과 같은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위치로 이전된 것은 일제강점기의 일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동헌로 149
서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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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역사관광

서봉사

서봉사는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에 위치하는 사찰로 비구니 스님들이 기거하는 절이다. 도심 속에 있는 조계종 사찰로 수도산의 꼭대기에 자리 잡아 남구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1920년에 창건되었으며, 1970년대 본래의 목재 요사를 헐고 건립한 대웅보전은 경남 양산 통도사의 T자형 적멸보궁을 본뜬 독특한 건축양식을 선보이고 있다.

대구광역시 남구 명덕로54길 34 서봉사
서벽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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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역사관광

서벽고택

※ 25년 3월 산불로 인해 건물 일부가 소실되어 방문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 text202503{ COLOR: #FF0000; } 서벽고택은 평산신씨 27세손 신한창(1669~1749)이 종택에서 분가하면서 1739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4칸 구자형 평면에 전면 부분만 양쪽으로 한 칸씩 덧붙인 날개집이다. 중문칸을 중심으로 서측에 사랑공간을 두었다.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들2길 22-2
서동사(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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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서동사(해남)

서동사(瑞洞寺)는 화원면 사동마을의 운거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대흥사의 말사이다. 사동마을은 서동사가 있어 ‘절골’로 부르며,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피난민이 서동사에 대피해 와 이곳의 울창한 칡넝쿨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다고 한다. 1730년 무렵 목관 강필경이 부임해 와 동헌에 북통을 만들 때 칡넝쿨이 진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때문인지 서동사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칡 북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화원면 절골길 244
서광사(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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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역사관광

서광사(서산)

서광사는 후삼국시대인 928년(신라 경순왕 2, 고려 태조 11)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며, 893년(신라 진성여왕 7)에 고운 최치원이 부성군 (현 서산) 태수로 역임하면서 공부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후 조선 후기에 현재의 사찰로 개편되어 삼선암이라 불리다가 1987년에 서광사로 개명되었다. 이곳은 본래 저녁 종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였으며, 현재는 여러 프로그램의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어 사찰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부춘산1로 44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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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역사관광

서문

국가 사적 남한산성 서쪽에 위치한 문이다. 1637년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에 항복할 때 통과한 문으로 산성 4개 문 중 가장 작고 오래된 문이다. 경사가 급해 물자 수송은 힘들었지만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으로 통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나무로 숯을 만들던 매탄 터와 국청사가 가까이에 있다. 저녁 무렵 노을이 아름답고 서문에서 바라보는 남산타워, 롯데월드타워, 위례 신도시 등을 촬영하여 작품 사진으로 만들려는 사진작가들 많이 찾을 만큼 야경의 명소이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서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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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역사관광

서광사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이 가득한 사찰이다. 넓은 주차장과 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있는 사찰로 사찰 경내를 돌아보면서 주위를 산책하기 좋다. 산림 수종이 다양하고 계절에 따라 다양한 경관을 볼 수 있어 이곳에서 강원도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크고 작은 계곡을 따라 맑고 깨끗한 물이 중앙으로 흐르고 있다. 맑은 공기와 졸졸 흐르는 물소리까지 우리의 마음을 경건하게 해 준다.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오투로 216
서곡정사석조약사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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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역사관광

서곡정사석조약사여래입상

원래 쌍용사로 불리던 절터에 있었으나 1980년경 광산 개발로 인하여 서곡정사로 옮기게 되었다. 불상과 광배(光背), 대좌가 모두 하나의 돌에 조각되어 있다. 목이 짧아 약간 움츠린 듯 보이는 점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비례가 좋은 편이다. 민머리의 정수리 부분에는 상투 모양의 작은 머리(육계)가 높게 솟아있다. 둥근 얼굴에는 양감이 풍부하며, 눈과 입 부분이 마모되어 있지만 얼굴 모습을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한반도면 용정원길 86-17
서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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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서계서원

산청읍에 위치한 서계서원은 조선 중기 문신 덕계 오건 선생(1521~1574)의 학문과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1606년(선조 39)에 한강 정구를 비롯한 사림이 창건하였다. 1677년(숙종 3)에 서계서원으로 선현을 배향하고 지방 교육을 담당했으며, 산음현(산청군의 옛 지명)의 유일한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921년에 복원되었다.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덕우지길 51
서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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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역사관광

서계서원

서계서원은 1781년(정조 5)에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조선 태종 때 문예관, 대제학 등을 역임한 오천 이문화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으며, 위패를 봉안하였다. 동화천의 서쪽에 위치해 있어 ‘서계서원’이라 불리며, 서원 편액은 조선 말기의 명필 윤용구가 쓴 것이다. 1801년(순조 1)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싸운 이주 선생을 추가로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대구광역시 북구 호국로51길 45-17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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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입상

경상북도 상주의 용화사에 모셔져 있는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입상은 광배와 불상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높이 1. 98m의 석불입상으로, 마멸이 심해서 세부수법을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다. 불상의 머리는 확실히 구별할 수 없지만 민머리처럼 보이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있다. 얼굴은 길고 풍만한 모습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지만 단정한 인상이다. 체구는 단정하며, 양 어깨에 걸쳐 있는 옷자락은 간결하게 표현되었다.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증촌2길 10-13
상주 옥동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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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상주 옥동서원

옥동서원은 황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1518년에 창건된 서원으로 원래는 백화서당이었다. 이후 1580년에 백옥동에 영당을 새로이 건립하여 황희의 신주를 모시고 봄, 가을로 향사를 지내왔으며 1714년에 서원으로 승격이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이때 전식(1563~1642)을 추배하였으며 1786년에는 황효헌(1491~1532)과 황뉴(1578~1626)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2길 29
상주동학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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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상주동학교당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의 평지마을에 있는 동학의 교당이다. 현 소유자의 부친 김주희(1860∼1940)가 1915년에 이곳에 본거를 정하고 민족 고유의 종교인 동학의 포교와 교세확장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1924년에 지었다고 한다. 동·서·남·북재 4동의 건물이 사방에 배치되었고 곳간채는 왼쪽 뒤편에 있다. 중심 건물인 북재는 성화실, 사랑채인 동재는 접주실, 안사랑채인 서재는 남녀교도가 각각 반씩 사용하였으며, 행랑채인 남재는 남교도가 사용하였다.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우기1길 64
상주 오작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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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상주 오작당

상주 오작당은 조선시대 의병장 조정이 지은 가옥으로 원래는 40여 칸이었는데 1781년에 부분적으로 헐어내고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집안에 설치하는 사당인 가묘가 남아 있다. 상주 양진당에서 조금 떨어진 남쪽에 뒷산을 등지고 장천과 주변의 넓은 밀밭들을 향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의 왼쪽에 중간 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중문간채와 사랑채가 있는데, 앞면 7칸, 옆면은 2칸과 2칸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선상서로 1975
상주 양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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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상주 양진당

조선시대 문신 검간 조정이 1626년 지은 가옥인 상주 양진당은 종도리(용마루 밑 서까래를 거는 도리)기록에 의하면 1807년(순조 7)에 중수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1966년 대홍수 때 사랑채가 훼손되고 안채 23칸만 남았으나 1981년 전면 해체, 복원하였다. 원래 정면 9칸, 측면 7칸의 규모의 ‘ㅁ’자형 맞배지붕 건물인데 지금은 퇴락하여 좌우가 약간 다른 ‘ㄷ’ 자형으로 남아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27-4
상주 승곡리 추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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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상주 승곡리 추원당

추원당은 1759년(영조 35)에 목조와가로 최초 건립되었으며, 배치는 묘우, 강당, 내외삼문, 전사청, 고직사 등 전형적인 재사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조선 선조, 인조 때의 학자인 정구, 김성일의 제자였던 검간 조정 선생의 불천위를 모신 재사이다. 조정 선생은 임란 시 창의하여 의병 활동을 주도하였고, 특히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임진란 기록’은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임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보존되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59-15
상주 금흔리 이부곡 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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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상주 금흔리 이부곡 토성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금흔리에 있는 이 성은 흙으로 쌓은 산성으로, 내부에 넓은 계곡을 포용하고 계곡을 둘러싼 주위의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은 포곡식 산성 형태를 띄고 있다. 사벌면의 들판을 U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능선 가운데 있으며, 성의 안과 밖에서는 청동기 말기, 초기철기시대의 유물과 원삼국시대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금흔리
상이암(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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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역사관광

상이암(임실)

성수산에 위치한 상이암은 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최초 도선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후 태조 3년(1394) 각여선사(覺如禪師)가 증수하였으나 1894년 동학혁명 때 병화를 입었다가 다시 1909년 김대건(金大建)이 중건했다. 일본 강점기에는 의병장 이석용이 상이암을 근거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그 여파로 절은 일본군대에 의해 불에 타버렸다. 1912년 대원(大圓) 스님이 재건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당시 소실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수면 성수산길 658
상연대(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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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역사관광

상연대(함양)

함양군 백전면에 위치한 상연대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 경애왕 1년(924) 고운 최치원 선생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건립하여 관음 기도를 하던 중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상연(上蓮)이라는 이름을 하여 상연대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창건한 이래 신라말에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선문(實相禪門)을 이곳에 옮겨와 선문(禪門)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길 3-291
상원사(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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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역사관광

상원사(원주)

상원사는 치악산 남대봉(1,182m)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100평 남짓한 돌바닥 위에 세워져 있다. 절 앞 바위틈에서는 샘물이 솟고, 그 앞 40여 m 벼랑 끝에는 희귀한 계수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치악산의 이름 유래가 된 은혜 갚은 꿩 전설이 이 절에서 비롯되었다. 상원사는 신라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대웅전·심우당·심검당·범종각·산신각 등이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로 930
상락사(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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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상락사(상주)

상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참배객들의 방문이 쉽다. 상주 불교 포교당으로 1921년 설홍스님이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며, 상주 지방 불교 부흥과 보급에 크게 기여해 온 사찰이다. 당초 포교당이던 사찰명을 2002년 상락사(常樂寺)로 바꾸었다.

경상북도 상주시 서성4길 19 (서성동)
상사마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구례군역사관광

상사마을

상사마을은 전국 최장수 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장수마을에는 항상 좋은 물이 있게 마련인데 사도리의 경우 당몰샘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믿는다. ‘지리산 약초 뿌리 녹는 물이 다 흘러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몰샘에서 나오는 샘물의 효능 덕분에 마을에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당몰샘 옆에 위치하고 있는 쌍산재는 사도리의 유명한 집으로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 ‘윤스테이’ 촬영지이기도 했다. 쌍산재는 유명한 고택치고는 작은 대문을 가지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마산면 장수길 6-1
상서마을 옛 돌담길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완도군역사관광

상서마을 옛 돌담길

청산면 상동리의 상서마을은 마을 전체가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서마을의 돌담들은 흙을 사용하지 않고 돌로만 쌓은 전형적인 강담 구조를 띠고 있다.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으로 인하여 마을 길을 넓히느라 일부 담장을 옮기기도 하였지만 대체적으로 원형 그대로 잘 보존이 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청산면 상동길 91-1
상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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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역사관광

상달암

포항 상달암은 양동마을 경주손씨 입향조이자 조선 전기 문신인 손소의 묘를 조성할 때 묘소를 수호하고 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분암이다. 인근에 있던 분암(제사를 위한 시설)을 기반으로 하여 1484년에 중건된 재실 건축으로, 이후 1595년과 1786년에 각각 수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달암은 ㄱ자형 평면을 갖는 맞배지붕 건물로, 1484년 중건 당시 누마루(화수루) 부분이 덧붙여져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연일읍 새마을로766번길 21
상가리미륵불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예산군역사관광

상가리미륵불

일반적으로는 미륵불로 불리지만 형태로 볼 때 관세음보살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에는 초화문장식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중앙에는 변화한 부처님을 상징하는 작은 화불이 조각되어 있고, 양옆의 머리띠 매듭은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얼굴은 길쭉하지만 양볼이 두툼한 편이며, 눈은 지그시 감았고 오똑한 코 끝은 훼손되었다. 법의는 우견 편단으로 선간 되었으며, 왼쪽 어깨에는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있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삼천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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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은평구역사관광

삼천사(서울)

삼천사는 661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따르면 그 규모가 대단히 커서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한다.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지만 최근의 고고학적 조사를 거치면서 ‘三千’이 아니라 ‘三川’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삼천사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연서로54길 127 (진관동)
삼척공양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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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역사관광

삼척공양왕릉

고려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재위 1389~1392)과 그의 두 아들의 묘로 전해지고 있다. 일명 궁촌왕릉으로 불린다. 고려 공양왕 4년(1392년) 7월에 이성계가 조선 태조로 즉위하였다. 태조는 8월에 공양왕을 폐하여 공양군으로 봉하고 강원특별자치도 원주로 보내어 감시하다가 태조 3년 3월에 공양군과 그의 두 아들 귀양지를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로 옮기고 한 달 뒤인 4월에 모두 처형했다.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삼척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역사관광

삼척향교

1398년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1407년 옥서동 월계곡으로 이전하였다가 1468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 정면 7칸, 측면 1칸의 명륜당을 비롯하여 동재, 서재, 동무, 서무, 숙청재, 장경실, 신삼문, 직청, 동서협문, 제기고 등이 있으며 향교 밖에는 홍살문과 비군이 있다. 대성전에는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향교길 34
삼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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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동구역사관광

삼매당

조선 선조 때 연원도(連元道) 찰방을 지낸 박계립(朴繼立)이 지은 17세기의 건물이다. 대전 보건 대학 담을 끼고 좌측으로 가면 송시열 유적지가 나오고, 그 뒤쪽으로 올라가다가 박팽년유허비(朴彭年遺墟碑) 아래쪽에 있다. 인근인 동구 가양동에서 태어난 그는 관직에서 물러난 후인 인조 22년(1644년) 이곳에 서당을 짓고 정원에 매화 세 그루를 심었으며, 사방에 정자를 세우고 버드나무 5그루를 심어서 오류정(五柳亭)이라 불렀다.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
삼척 영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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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역사관광

삼척 영경묘

영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의 부인이자 4대 조인 목조 이안사의 어머니가 되는 평창 이 씨의 무덤이다. 원래 이양무와 함께 전라도 전주에 거주하였으나 이곳으로 이주하여 생활하다가 별세하였다. 후에 목조 이안사가 함경도로 이주하면서 수백 년 동안 잊혔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를 비롯한 조선의 임금들은 조상의 무덤을 찾으려고 매우 애썼다.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
삼막사 남녀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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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역사관광

삼막사 남녀근석

삼막사 남녀근석은 칠성각의 서북쪽에 위치한 2개의 자연암석으로 그 모습이 남자와 여자의 성기 모양을 닮았다. 남근(男根)과 여근(女根) 모양을 닮은 자연 그대로의 돌이다. 남근석의 높이는 150㎝, 여근석의 높이는 110㎝이며 서로 2m의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성기 숭배 신앙(phallicism)은 주로 성기를 닮은 바위나 기암괴석 등 자연물을 대상으로 하지만, 인위적으로 나무나 돌을 가지고 성기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삼막로 478 (석수동)
삼거동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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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광산구역사관광

삼거동 고인돌

삼거동 고인돌군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무덤이다. 삼거동 고인돌들은 모두 49기인데 반경 200미터 이내의 구릉에 분포에 있다. 두 개로 무리를 지어 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마치 바둑판처럼 보인다. 49기의 고인돌 중 20여 기는 덮개돌을 지탱하는 받침돌이 없으며, 덮개돌은 원형과 타원형으로 형태가 일정하지 않다. 23기로 이루어진 한 무리의 고인돌은 동서로 위치하고 있는데, 2기만 덮개돌이 1∼1. 3m로 두껍고 나머지는 얇은 편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삼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