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우덕이사당
바우덕이는 안성 남사당의 전설적인 인물이면서 한국 남사당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여성 꼭두쇠로 알려진 인물이다. 구전에 의하면 5살 때 머슴으로 살던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자 남사당패에 맡겨져 성장하면서 재주를 익혀 염불, 소고춤, 줄타기 등 남사당의 모든 기예를 익혔다고 한다. 15살 때 당시 안성 남사당패를 이끌던 윤치덕(꼭두쇠)이 사망하자 남사당패의 관례를 깨고 여성의 몸인 바우덕이를 우두머리인 꼭두쇠로 선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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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덕이는 안성 남사당의 전설적인 인물이면서 한국 남사당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여성 꼭두쇠로 알려진 인물이다. 구전에 의하면 5살 때 머슴으로 살던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자 남사당패에 맡겨져 성장하면서 재주를 익혀 염불, 소고춤, 줄타기 등 남사당의 모든 기예를 익혔다고 한다. 15살 때 당시 안성 남사당패를 이끌던 윤치덕(꼭두쇠)이 사망하자 남사당패의 관례를 깨고 여성의 몸인 바우덕이를 우두머리인 꼭두쇠로 선출했다고 한다.

안성 봉업사지 인근에 있는 높이 3. 9m의 보살상이다. 볼륨감 없이 평평한 돌기둥 같은 신체에 전체적으로 세부를 정교하게 조각하지 않고 높은 원통형의 보관에 사각의 보개(寶蓋 ; 인도에서 귀인의 외출 시에 사용하던 양산을 불상의 머리 위에 갓처럼 씌운 것)까지 얹은 표현은 고려 전기 불상의 양식적인 특징이다. 보개는 이후 변형을 이루면서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한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고려 전기 불상의 특징이다.
만세고개는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과 양성면 사이의 고개이다. 1919년 4월 1일 원곡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원래의 이름은 성은고개 또는 양성고개이다. 3. 1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4월 1일 밤 원곡면민 1,000여명이 만세고개에 이르러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결의한 뒤 양성으로 돌진하였다. 양성 주민 1,000여 명과 합류하여 일본의 기관들을 불태우고 이 지역을 2일간 해방시켰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으로 기사사화(己巳士禍)에 연루되어 유배 도중 세상을 떠난 오두인(吳斗寅, 1624~1689)의 충절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 21년(1695)에 건립된 서원이다. 숙종 23년에 임금이 ‘덕봉’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여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 고종 8년(1871) 서원철폐령 때에도 헐리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너리굴 문화마을은 비봉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캠핑장과 펜션 및 다양한 문화공간까지 갖춘 산속의 마을이다. 너리굴아란 말은 넓은 골이라는 뜻의 안성 고유어이다. 너리굴 문화마을은 자연과 예술이 한데 어울려 있는 마을로, 강당 및 회의실과 펜션 숙소, 카라반, 운동장, 수영장, 카페, 아트숍 등이 갖추어져 있다.

경앙사는 오진영 선생의 문인들이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노주 오희상을 비롯해 간재 전우, 석농 오진영 선생의 학덕과 절개를 기리기 위해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다. 매년 음력 3월 10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건물은 총 26㎡(8평)로 겹처마 맞배지붕의 한옥이며, 홍살문, 삼문, 사당 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