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사(계룡)
무상사는 계룡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아담한 사찰이다. 외국인 스님들이 머무르며 한국불교를 수행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3개월 간의 집중 선 수행 안거를 실시한다. 여름에 열리는 수행을 하안거 겨울에 열리는 수행을 동안거라고 하며 그 외 해제 기간에는 다양한 사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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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사는 계룡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아담한 사찰이다. 외국인 스님들이 머무르며 한국불교를 수행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3개월 간의 집중 선 수행 안거를 실시한다. 여름에 열리는 수행을 하안거 겨울에 열리는 수행을 동안거라고 하며 그 외 해제 기간에는 다양한 사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두마신원재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사계 김장생(金長生) 선생의 9번째 아들인 김비의 재실이다. 재실은 굴도리계통 정면 4간 측면 1. 5칸의 홀처마 팔작지붕이다. 전면에 신원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계룡 사계고택은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자 예학자였던 사계 김장생 선생이 말년에 살았던 집으로 후학 양성과 학문에 전념하던 곳이다. 약 2800여 평의 넓은 대지에 남쪽으로부터 대문채·은농재·행랑채·안채, 그리고 그 뒤에 가묘가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또 안채의 왼쪽 편에 나 있는 협문을 지나면 다시 안별당 건물이 있고 그 앞쪽으로 큰 연못이 있는데 이 주변에는 많은 괴목들이 우거져 풍취를 더 하여 주고 있다.
계룡산신도내주초석석재는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이다. 신도안면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후, 천도 후보지로 정했던 지역이다. 궁궐을 짓기 위해 1년여간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목재와 석재 등을 운반하다가, 신도안이 국토 남쪽에 치우치고 교통과 물 공급이 불편하며 풍수상 고려 개경과 유사하여 신 왕조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중단되었다. 이때 대궐터에 주춧돌로 쓰려고 가져다 놓은 주초석 약 115개가 남아 전해지고 있다.

모원재는 김국광 선생의 사당이다. 김국광 선생은 세종 23년(1441)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세조의 즉위를 도와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되었다. 편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벼슬이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에 이르렀다. 인조 원년(1623)에 지은 모원재는 앞면 4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