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주 옥동서원
옥동서원은 황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1518년에 창건된 서원으로 원래는 백화서당이었다. 이후 1580년에 백옥동에 영당을 새로이 건립하여 황희의 신주를 모시고 봄, 가을로 향사를 지내왔으며 1714년에 서원으로 승격이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이때 전식(1563~1642)을 추배하였으며 1786년에는 황효헌(1491~1532)과 황뉴(1578~1626)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지역과 취향으로 찾기
지역과 관심 분야를 선택해 나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보세요.
5건

옥동서원은 황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1518년에 창건된 서원으로 원래는 백화서당이었다. 이후 1580년에 백옥동에 영당을 새로이 건립하여 황희의 신주를 모시고 봄, 가을로 향사를 지내왔으며 1714년에 서원으로 승격이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이때 전식(1563~1642)을 추배하였으며 1786년에는 황효헌(1491~1532)과 황뉴(1578~1626)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상주 오작당은 조선시대 의병장 조정이 지은 가옥으로 원래는 40여 칸이었는데 1781년에 부분적으로 헐어내고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집안에 설치하는 사당인 가묘가 남아 있다. 상주 양진당에서 조금 떨어진 남쪽에 뒷산을 등지고 장천과 주변의 넓은 밀밭들을 향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의 왼쪽에 중간 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중문간채와 사랑채가 있는데, 앞면 7칸, 옆면은 2칸과 2칸이다.

조선시대 문신 검간 조정이 1626년 지은 가옥인 상주 양진당은 종도리(용마루 밑 서까래를 거는 도리)기록에 의하면 1807년(순조 7)에 중수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1966년 대홍수 때 사랑채가 훼손되고 안채 23칸만 남았으나 1981년 전면 해체, 복원하였다. 원래 정면 9칸, 측면 7칸의 규모의 ‘ㅁ’자형 맞배지붕 건물인데 지금은 퇴락하여 좌우가 약간 다른 ‘ㄷ’ 자형으로 남아 있다.

대승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1644년(인조 22)과 1722년(경종 2)에 의현, 종수 등이 중수하였고, 1831년(순종 31) 구담이 중창하였다. 1922년 큰 화재로 불타 의운, 덕산이 복원시켰는데, 1956년 또다시 큰 화재가 발생하여 명부전과 극락전만 남고 소실되어, 1960년 남인 대휴 등에 의해 삼창 되었다.

원성왕릉은 낮은 구릉의 남쪽 소나무 숲에 있는 것으로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원성왕의 이름은 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 후손으로 독서삼품과를 새로 설치하고 벽골제를 늘려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 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약 23m, 높이 약 6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