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구서원
반구 서원은 ‘언양읍지’에 의하면 1712년(숙종 38)에 세웠다고 한다. 선현 중 정몽주와 이언적은 울산의 구강서원에 이미 봉안되었거니와, 정구를 봉안한 것은 그가 퇴계 문인이면서 언양과 그리 멀지 않은 성주 출신이라는 데서 근거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시경(詩經)의 반구 서원은 구강서원과는 달리 사액되지 못하였다. 이것은 언양 사림이 중앙의 정치세력과 연결하여 사액 운동을 벌일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실력이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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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 서원은 ‘언양읍지’에 의하면 1712년(숙종 38)에 세웠다고 한다. 선현 중 정몽주와 이언적은 울산의 구강서원에 이미 봉안되었거니와, 정구를 봉안한 것은 그가 퇴계 문인이면서 언양과 그리 멀지 않은 성주 출신이라는 데서 근거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시경(詩經)의 반구 서원은 구강서원과는 달리 사액되지 못하였다. 이것은 언양 사림이 중앙의 정치세력과 연결하여 사액 운동을 벌일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실력이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독립운동가 박상진(1884~1921) 의사가 살았던 곳이다. 대지주였던 박상진 의사는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여 집안이 몰락하고 이 집도 남의 손에 넘어갔으나 2002년 울산시가 매입하여 2007년 복원 정비 사업을 완료하였다. 사랑채, 안채 등 모두 6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기와집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ㅂ자 구조를 가진 조선 후기 양반 살림집이다.
문수산은 신라와 고려 때는 영축산이라 불리던 산으로 문수사는 산의 이름을 따서 절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돌을 문지르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문댐돌로 유명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영취산 또는 청량산 이라고도 불렸으며 읍의 이름인 청량읍은 바로 청량산에서 유래하였다. 신라 원성왕(785~798) 때 연회국사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

동축사는 울산지역의 고찰로서 신라의 불국토사상이 반영된 성지이다. 신라 진흥왕과 인도 아육왕의 정신적 만남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아육왕이 배에 실어 보낸 석가삼존불의 모형을 봉안하기 위해 세운 사찰이라는 연기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동축이라는 이름에서도 이곳이 범상치 않은 불국토임을 짐작할 수 있다.

도솔암은 울산 무룡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지리산 대화엄사의 말사이다. 아주 옛날 무룡산 정상에 있는 연못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고 이곳에서 용들이 비를 뿌리며 춤을 추고 놀았다고 하여 무룡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김복선, 김수화 자매가 출가하여 아일다와 성련이라는 법명으로 활동하면서 민가를 매입하여 절로 바꾸면서 도솔암을 창건하였다.

내원암은 울산 12경 가운데 하나인 대운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신라시대의 고찰 가운데 하나이다. 석남사, 문수사, 신흥사와 함께 울산 지역의 4대 고찰 가운데 하나로, 신라시대 고봉 선사가 창건하였다는 대원사의 암자로 현재 대원사는 내원암 입구에 터로 남아있다. 주변은 울산 12경 가운데 하나로 계곡물이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하여 울산과 주변 지역 시민들이 즐겨 찾고 있는 곳이다.

포은 정몽주와 회재 이언적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으로 강학과 교화, 제향 등을 하며 조선시대 선비를 양성했다. 숙종 4년(1678)에 세웠으며 숙종 20년(1694)에 구강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약 200여 년 동안 강학과 향사를 봉행해 오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철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