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해안동에 있는 구 일본우선(郵船)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은 개항 이후 인천의 해운업을 독점했던 일본 운송회사의 사옥이었다. 일본우선(郵船)주식회사는 당시 인천의 해운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으며 지금도 도쿄에 본사를 두고 해운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건물은 당시 업무용 건물로서 규모가 큰 편으로 붉은색 지붕에 외벽을 노란색 타일로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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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동에 있는 구 일본우선(郵船)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은 개항 이후 인천의 해운업을 독점했던 일본 운송회사의 사옥이었다. 일본우선(郵船)주식회사는 당시 인천의 해운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으며 지금도 도쿄에 본사를 두고 해운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건물은 당시 업무용 건물로서 규모가 큰 편으로 붉은색 지붕에 외벽을 노란색 타일로 처리했다.
인천광역시 항동에 있는 인천우체국은 일제강점기 우편 업무를 담당하던 건물이다. 인천우체국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12월 10일 건축됐다. 우편 업무를 담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은 근대식 건물로, 당시 행정 관청 건물 중에서 큰 규모로 만들어졌다. 총면적 1,787㎡, 약 540평으로 웅장한 건물이었다. 건립 당시의 명칭은 인천우편국이었으며, 해방 이후인 1949년 8월에 인천우체국으로 바뀌었다.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 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한 초소로,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물이다. 망월평야 남서방향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이 돈대는 바깥벽 측면에 기록이 남아 있으며, 망월돈대와 함께 관아에서 관리하던 돈대이다.

1866년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함대가 갑곶 돈대로 상륙했다. 이로 인해 강화 지방에서는 혹독한 박해가 시작됐고 갑곶 성지가 보이는 백사장에서 많은 신자가 순교했다. 또 1871년에는 미국 군함에 다녀왔다는 죄로 우윤집, 최순복, 박상손 등이 갑곶 진두에서 순교했다. 후에 천주교 인천 교구는 갑곶 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지금의 갑곶 순교성지를 조성하고 2004년 2월 10일 갑곶 순교성지 첫 미사를 드렸다.

오상리 고인돌군에서는 모두 12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데, 2000년 실시된 발굴조사에 의하면 모두 북방식 고인돌이라 한다. 이 지역의 고인돌은 덮개돌은 부분적으로 손질한 흔적이 있고, 평면 형태는 모두 판돌형(板石形)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기념물로 지정된 내가 고인돌이 가장 크고 나머지는 길이가 다양한 편이다. 돌방(石室)은 돌널형태의 모습이고, 고임돌이나 막음돌을 세울 때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주변에 쐐기돌을 사용하였다.

강화도는 19세기 말 조선이 문호를 개방할 때 지리적 여건으로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탓에 서양인들의 선교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당시에 세워진 교회 중 지금까지 강화도에 남아있는 것만 세 곳에 이른다. 1900년에 세운 성공회 강화 성당, 1906년에 세워진 강화 온수리 성공회 교회 그리고 서도 중앙 교회가 현존하고 있는 당시의 교회들이다. 그 중 서도 중앙 교회는 1923년 교인들의 건축 헌금으로 지어지기 시작해 7월에 완공된 한옥 예배당이다.

강화유수부 동헌은 오늘날의 군청과 같은 관아 건물이다. 조선 후기 강화에는 개성, 수원, 광주와 함께 특별행정구역인 유수부를 설치하고 종2품 당상관인 유수를 파견하였는데, 유수가 집무를 보던 중심 건물이 강화 유수부 동헌이다. 조선 1638년에 유수 김신국이 개수하였고, 1769년에 유수 황경원이 현문관이라 이름하였다. 여러 차례에 걸친 개조로 원형은 남아있지 않다. 앞면 8칸, 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집이다.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이다. 몽골의 침입으로 백성과 국토가 수난을 당하자, 당시 실권자인 최우는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다. 왕궁과 성·관아 시설은 1234년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때 개경의 궁궐과 비슷하게 지어 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지었다. 성은 흙으로 쌓았고,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로, 조선시대 강화도 해안에 돌로 쌓은 돈대 53개가 설치됐다. 갑곶돈대는 1679년 5월에 완성된 48 돈대 가운데 하나이다. 강화 돈대는 황해도·강원도·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 갑곶돈대는 망해돈대·제승돈대·염주돈대와 함께 제물진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포좌가 있는 본래의 갑곶돈대는 옛 강화대교 입구 북쪽 언덕에 있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삼랑성은 고려시대 이후 개경과 한양을 방어하는 성곽이었다. 둘레는 2. 3㎞ 정도이며, 성곽은 산 정상부에서 남문쪽 해발 75m 능선까지 산의 지형을 따라 쌓아서 북쪽과 남쪽의 고도 차가 크다. 단군의 세 아들이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 정족산의 한 봉우리씩 맡아서 쌓게 되었고, 이를 본 사람들이 이 산성의 이름을 사내 랑(郞)을 써서 삼랑성이라 불렀으며, 강화도 남쪽 해발 222m의 정족산에 있어 정족산성으로도 불린다.